작가 본인은 실제로 숙명여대 77학번인데 이 책은 소설적인 묘사보다는 어느정도 작가 개인의 경험이 짙게 사실적으로 들어가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가 주요 배경이며 40년의 세월을 지난 2017년이 작중 현재 시점으로 묘사되어있다. 화자인 김유경과 작중 소설가인 김희진이 주요 인물이다. 김유경이 현재 시점인 2017년에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 를 읽으며 40년전 기숙사 생활을 회상하고 있다. 기숙사는 4인 1실인데 322호는 3학년 최성옥, 2학년 양애란, 1학년 오현수, 같은 1학년인 화자 김유경이고 417호는 송선미(최성옥과 절친), 2학년 곽주아, 1학년 이재숙, 1학년 김희진이다. 두방의 학생들은 서로 친한 편이며 종종 모이기도 한다.
주인공 김유경은 지방출신이어서 보수적이면서도 소심하고 내몰적이고, 양애란은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도 학업에도 열심이어서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인물이고, 오현수는 권위주의 시절의 한국보다는 개방적인 일본에 살던 경험으로 자기 의사표현이 분명한 인물로 묘사되어있다. 417호의 주요 인물인 김희진은 다소 자기중심적이면서 시니컬한 성격이어서 반대로 내성적이고 자기주장이 약한 김유경과 오랜 친분을 유지하게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김유경과 김희진은 한때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기도 하는 등 수십년간 간헐적으로 교류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결코 친한 사이는 아니다.
70년대의 기숙사답게 기숙사 수칙이나 선후배 관계같은 것들에 있어 부분적으로는 군대와 같은 분위기가 많이 눈에 띈다. 점호시간에 늦으면 당사자뿐 아니라 룸메이트 4명 모두 사감실에 불려가서 혼나고 청소 벌칙을 받는다던가, 어떤 남자와 함께 여관에 들어간 것이 목격된 것도 아니고 '여관길'을 팔짱을 끼고 걷는게 눈에 띄어 사생들의 입방아에 퇴사했다던가 하는 것들이 그렇다. 어쨌든 이야기는 봄에는 기숙사의 이런저런 생활상과 인물상을 묘사하다가 5월 이후에는 주로 등장인물들이 축제와 블라인드 미팅을 거쳐 전개되는 연애담으로 이어져 만나고 헤어지고 삼각관계를 이루기도 하는 식으로 흘러간다.
2017년의 현재 시점에서는 대부분 김유경과 김희진 2명만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두사람은 동창이지만 접촉할때마다 매번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김유경은 국문과 출신에 교내 문예공모전에서 '근시안들의 밤'이라는 제목의 시로 가작으로 뽑힌 적도 있고 졸업후에는 다수의 책을 번역하기도 하는 등 기본적으로 문학에 대한 소양이 있다. 김희진은 같은 공모전에 응모했다가 떨어졌다가 늦깎이 소설가로 데뷔했다. 또한 두사람이 한때 같은 직장에 다닐때 김유경의 상사였던 김희진은 사내 스캔들로 퇴사했는데 소심한 김유경은 회사내에서 어떤 변론도 해주자 않았다. 해서 자아가 강한 김희진은 이런 기억으로 김유경에 대해 편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현재 사생들의 인생유전은 많이 다르다. 최성옥은 긴급조치 위반 수배자인 남학생을 숨겨준 사건에 휘말려 일찌감치 퇴학당했고(1977년 시점), 송선미는 (아마도) 최성옥의 퇴학으로 인한 충격으로 자퇴했고 이후 오랜 기간을 우울증과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주인공 김유경도 남편의 잦은 입퇴사로 인한 생활고로 광고회사 계약직 직원, 출판사 교정 아르바이트, 기간제 국어 강사 등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학생시절 속칭 날라리같았던 양애란은 의외로 대학교수를 하고 있고, 시골 출신으로 제일 성격이 무던하던 이재숙은 주부가 되어 여행 블로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읽기에 재미는 있는 편이다. 특히 70년대를 경험했던 중년층 이상에게는 그 시대의 명동 음악감상실, 정부의 긴급조치 제 XX호 같은 친숙한 생활상을 떠올리게 하여 회상에 잠기게 한다. 그러나 작가가 7년만에 출간한 장편소설이라 미안하기는 하지만 수작의 반열에 올라갈만한 문장력은 아닌 것 같다. 인물 개개인의 개별적인 사건들을 나열식으로 펼쳐놓았을뿐 인상적인 플롯이 잡히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인물 묘사도 개성적이거나 입체적이지 않다. 이를테면 김희진과 오현수는 캐릭터가 일부 겹친다. 중견 등단작가다운 본격 문학과 월간여성잡지 연재소설의 사이 어디쯤엔가 위치한 작품같다. 작가가 과거 출세작인 '새의 선물'에서 보여준 산뜻한 문장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