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경애의 마음이었지만,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경애가 아니다. 반도미싱의 영업팀장 대리 공상수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공격적인 영업을 해도 모자랄 판에 감정적인 영업을 통한 아날로그적인 접근으로 다른 입사동기와 달리 팀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팀장 대리라는 어색한 직함을 단채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일하기는 했지만 한국의 공장주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기를 거부한다든가, 물품계약서를 '가라'로 작성하는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았다든가, 중간관리자들에게 뒷돈을 챙겨주지 않았다든가, 지난해에는 거래처 사장 주선으로 대구에서 자신이 은근히 짝사랑하는 김유정 팀장이 맞선 보는 자리에 무작정 들이닥친 일도 있었다.
-유정이 대구에서 맞선 본다는 사실은 회사에서 누군가가 알려주었는데, 회사 사람들은 상수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근히 괴롭히고 싶은 마음까지 참아내는 것은 아니었다.(P.15)
상수 아버지의 재수학원 동기인 회장과의 친분으로 입사한 낙하산 공상수는 납득되지 않는 그의 행동들은 다 용인되고 팀장으로 승진할 만큼 성과는 없지만 '팀장대리' 라는 팀원하나 없는 애매한 직책까지 오르게 된다. 그도 자신의 위치가 해고를 위한 대기 발령이 아닌지, 그것이 아니라면 팀원을 원하자 파업에 적극 가담한 이유로 회사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박경애를 팀원으로 떠안게 된다.
서로 이렇게도 안 맞나 싶을 정도였던 이들에게 우연한 기회로 접점을 찾게 된다. 상수는 '언니는 죄가 없다(언죄다)'는 연애 상담 페이스 북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명 언니로 불리우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팔로워가 2만명이나 되는연애 상담 페이지를 팔 년째 운영하고 있다. 유명 페이지가 되었지만, 정체를 드러낼 수 없었다. 반도미싱 팀장대리인 서른일곱 살의 마포구 거주 남성이 아닌, 그 페이지에선 '언니'라 불렸고 그렇게 오랫동안 언니로 살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호프집 화재사건과 반도미싱 파업 이야기 등 사회적 이슈를 통해 달라진 주인공의 삶, 그리고 주인공 둘의 연결점이 너무 자연스러워 읽는 내낸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경애의 옛 애인 산주의 등장으로 경애가 상수가 운영하는 '언죄다'에 메일을 보내면서 상수는 경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녀가 자신과의 사이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E'라는 연결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E(은총)는 인천 남현동호프집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술값을 받지 못할 것을 걱정한 사장이 문을 걸어 잠궈 빠져나오지 못한 것인데,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었다.
호프집을 운영하던 사장은 평소 뇌물로 공무원을 매수했고, 화재가 있던 날도 자신만 탈출해 목숨을 건진다. 후에 CCM 가수가 되어 활약하는 모습은 영화 '밀양'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운명적인 사건으로 범죄자가 되자 그 시련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몰라요. 감옥까지 갔으니까요. 하지만 어느날 교도소 창으로 빛이 비추이며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저를 찬양역사로 만들기 위해 하느님이 그 모든 고통과 시련을 주신것 아니겠습니까. 모든 걸 내려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천국이 열리더군요."(P.345)
경애와 상수, 그리고 해고되었던 조선생이 새로운 포부를 위해 떠난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사건에서도, 통쾌한 결말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늘 결과가 희망적이진 않다는 기조가 소설 내내 이어진다. 회사에 관심 없지만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은 사장, 아버지 인맥 덕분에 회사에 취직해 어찌 어찌 다니는 상수, 리베이트가 일상인 김부장,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만 회사를 그만 두지 않는 경애 등 인물의 모습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가 해킹되어 상수가 언니가 아님이 밝혀지는 과정에서도 어떤 드라마틱한 내용이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공감을 주었다. 경애와 상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해피엔딩을 암시하며 소설이 마무리된다. 고단한 삶을 이어온 그들이 일련의 상황을 함께 겪으면서 비로소 그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게 되는 마무리가 좋았다. 그것이 꼭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더이상 삶이 고단하기만 하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