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는 김영하 작가의 산문책이다. 처음 이 책을 고를 때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이랑 제목이 비슷해서 더 관심이 갔다. <여행의 기술>의 경우, 통상의 여행책과는 달리 여행을 “어떻게”할 수 있을지 여행에 대한 생각의 프레임 자체를 바꿔주는 신선한 책이였다. 여름 휴가를 계획하면서 여행에 대한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며 여행이 가진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김영하 작가는 알쓸신잡에 출연하여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분의 소설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말하는 모습을 보면 조용하고 진중한 성격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이 분이 쓴 책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이 책 또한 진중하고 어찌보면 많은 재미는 없는 책이다. 여행에 대해서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으로 한번쯤 보면 좋은 책이고, 여행지에서 위트가득하고 유머러스하며 신선한 책을 읽으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싶은 분들께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작가가 생각하는 여행에 대한 생각과 내 생각에 많은 차이가 있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작가가 처음 중국 여행을 갔을 때의 이야기다. 80년대에 태어난 나로선 매우 생소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해외여행이란 것이 그렇게 가기 어려운 것이었는지, 특히 중국이란 나라가 지금은 우리와 이렇게 교류가 많고 자유롭게 왕래하는 곳인데 작가가 다녀온 시절에는 학생들은 공식적인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방문 가능했던 곳이란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운동권에 있던 저자가 자본주의를 동경하는 베이징대 학생을 만나 신선한 충격을 받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또한 여행에 대한 책이기도 하면서 작가라는 삶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소설가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여행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책이고, 소설을 집필해 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기도 해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흥미롭게 읽힐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의 동료 작가들을 만나는 일이 언제나 즐거운 것은 그들이 동시대 최고 수준의 언어로 독특한 화제들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쉴새없이 변하고, 언어에 민감한 이들은 시시각각 낡아가는 언어들을 금세 감별한다.‘ 이런 문장을 보면 작가라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대화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기게 되지 않겠는가!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구절은 <추방과 멀미> 챕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는 말이 여행이 가진 본질적인 속성을 농축해서 잘 보여주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고, 역시 작가란 사람들이 가진 표현력이란! 하고 감탄하게 되었다. 또 이런 말도 나온다.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시대에 나에게 익숙한 일상적인 환경을 벗어나, 마법적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우린 때론 일상으로부터 벗어남을 경험함으로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되고, 그로부터 위안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하는데, 여행이 어려워진 시점에 우리는 더더욱 일상 속에 허덕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책에는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환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계산 되지 않는 호의를 받는 경험을 한다는 것. 그런 따뜻한 경험이 여행에 대한 추억을 더욱 특별하고 그리운 것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20대 학생시절, 친구와 함께 보길도로 떠나 용감하게 히치하이킹을 하고,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 집에서 하룻밤 저녁도 얻어먹고 잠도 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그때 나는 참 용감했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된다.
다음에 떠나게 될 나의 여행은 나에게 어떤 즐거움과 생각을 남기게 될까? 작가 김영하가 쓴 여행의 이유와 나의 여행은 이유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좀 더 즐거운 상상을 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