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련 글쟁이는 따로 있는듯하다. 물론 검색을 하고 껴맞추면 될듯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기본이 없다면 쉽지 않을터이다. 기본만 있다고 또 이렇게 쓸 수 있을까? 능력이다. 유홍준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읽어면서도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유시민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작가의 능력에 감탄한다. 글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다. 유교수의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유교수의 서술이 더 낫다는 약팍한 평을 해본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작가의 여행지가 내가 모두 가봤던 곳이다. 중국을 파느라 유럽, 미주쪽은 거의 가본적이 없는 나인데 어떻게 4개의 도시를 모두 가보았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이스탄불과 아테네는 2006년인가 7년인가 경에 가봤다. 금융노조의 간부들과 조직 현황등을 시찰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가 본 곳이 이집트, 그리스, 터어키였다. 당시만 해도 많이 가지 않던 코스였던듯.
이집트는 드렀던 관광지 어디나 있던 오벨리스크와 피라미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스핑크스도 있었고, 박물관고 있었지만. 정말 박물관은 초라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진귀한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으면서.
그리스에서의 기억은 좋지 않다. 심한 몸살감기로 충분히 보고 즐기지를 못했다. 아직까지 기억나는 것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기억, 오래된 도시여서 일까? 도로사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는 기억이 있다. 대리석은 아니었는데 회백색의 건물들이 생각이 나고. 나게게 당시의 사진이 별로 없는 것을 보니 디지털카메라가 그렇게 보편직이지는 않았던듯.
터키는 볼거리가 많았던 기억이 있다. 유작가가 언급했던 블루모스크와 소피아성당(아야소피아 박물관), 보스포루스 해협의 인상이 아직 남아있다. 소피아 성당의 보물의 값어치에 대해서 가이드의 설명이 인상깊었고 여행자들에게 다리미 판이 삼겹살 불판 역할을 한다던 말도 아직 기억에 있다. 이스탄불에서 들렀던 당시에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의 기억도 좋았던듯하다. 최근에 아랍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오스만투르크에 대한 내용도 재미있었다. 터어키가 6.25전쟁시 미국과 영국 등에 이은 참전용사가 많기로 제3~4위에 속하는 국가였다고 한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후 영토분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하여 국제사회에 어필할 필요성에서 였다는 설명과 함께였지만.
로마와 파리는 그보다 더이른 2001년 무렵이었던듯하다. 독일에 1주일정도의 짧은 연수기회가 있었는데, 언제 또 유럽을 올수있을까하는 생각에 무리를 해서 스위스와 로마를 찍고 파리를 경유하여 왔다. 당시에는 세밀한 여행계획도 딱히 없이 무작정 테르미니 역에 떨어져 벽에 붙어있는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고 돌아다녔었다. 2박 3일정도의 여정이었는데 생각나는건 바티칸시티와 넓은 광장에서 배낭여행온 한국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포도주와 과일주를 잔뜩 사서 숙소로 돌아가 주인이 준비해준 안주로 술을 마신 정도. 돌아보니 왜 이렇게 가난했던 걸까? 유작가처럼은 아니어도 현지 음식도 맛보고 하는게 여행의 묘미인데.
파리는 그야말로 에펠탑만 목표로 했었다. 새벽 일찍 파리역에 떨어져 오후 비행기인가를 타야 했으니. 안양천 규모나 될까한 센강의 규모에 놀랐고, 그 강 변에 모여있던 파리 사람들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날씨가 좋을 때면 한강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2000년 그 때는 조금은 참신한 풍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철탑인 에펠탑에 올라 파리시내를 조망한 기억이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산이보이지는 않았던듯하다.
전형적인 한국사람들의 찍고 옮기는 여행을 해왔던터라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제는 그런 여행에서 벗어나야 할듯. 여행을 가기전에는 역사와 문화등 사전 배경지식을 갖고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돌아보며, 관광후에는 현지의 찻집에서 차 한 잔하며 반추하는 기회도 가져야 여해의 묘미를 느낄수 있지 않을까?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 10년뒤 은퇴를 하면 내 맘대로 다 가볼 수 있을까? 태봉이와의 세계일주 프로젝트를 서둘러 준비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