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정 PD가 만든 다큐멘터리 '누들 로드'와 ‘요리 인류 키친’ 시리지는 방영 당시에는 보지 못했다. 이후 TV 채널의 후반부에 넘버링되어 있는 소규모 채널에서 몇 번 재방송한 것을 보았고, 캡처한 사진이나 웹페이지에 있는 움짤들로만 봤었다. 요리에 관심이 많지만 되도록 퇴근 후에 집에서는 음식에 관련된 방송을 잘 안 보려는 편인데, 밤에 그런 방송을 보게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고파'를 연발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욱정 PD 방송은 재밋게 보았다. 마치 여행 다큐멘터리처럼 그 지방의 상황, 그 요리를 만드는 사람과의 만남 또는 요리사의 이야기를 영상에 짧게 곁들여져 있어, 요리를 통해 여행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잘차려진 접시에 살짝 뿌려진 파슬리 가루처럼 빛나진 않지만 맛과 향이 배가되는 느낌의 곁들임이었다. 이 책도 다큐멘터리와 결을 같이 한다. 이 책은 이욱정 PD가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다녔던 여러 나라들의 대표적인 음식이나 특정 지방의 명물 요리에 대해 다루고 있고, 이 요리의 기원이나 발전과정에 대한 부분을 세세하게 적고 있지는 않다. 물론 요리에 얽힌 배경이나 재료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 페이지 정도로 간략하게, 양념마냥 살짝 곁들여져 있었다. 거기에다 그 요리의 완성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사진, 그 요리를 앞둔 요리사와 저자의 사진이 들어있다. 이런 식으로 한 요리 당 서너 장씩, 총 31가지의 요리 이야기가 펼쳐져있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레시피들이 하나같이 인상적이었다. 그 중 프랑스 동부 넓은 대지에서 자유롭게 키우고 있는 닭의 에피소드도 그렇고, 7년 동안이나 미슐랭 2스타 평가를 받아온 요리사 디디에 괴퐁의 요리도 참 좋았다. 그 닭 요리는 어떤 맛이기에 1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먹는 다는 건지 놀라는 이욱정 PD의 감탄을 시작으로, 코코뱅이라는 요리를 만드는 과정 또한 어렵지 않았지만 특별했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또는 누군가를 위해서 요리합니다. 그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기쁨이 제 요리에 담긴 정신이에요. 그래서 저는 늘 요리하는 것이 지구상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요리사가 만드는 음식은 어떤 맛일까. 행복한 마음으로 만드는 요리에는 그만큼의 행복도 담겨 져 있을 것이다. 요리는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의 교감이기도 하니 말이다.
다시 이 책의 원본이라고 할수 있는 ‘요리인류키친’으로 돌아와서, 이 방송은 방영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한두편을 보고 나서 너무 취향을 저격하는 지라, 유료 결제로 전체 에피소드를 다운받아 본 최초의 프로그램이었다. 하나의 레피시가 매일 10분씩 나오기에 부담 없이 찾아 볼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방송을 볼 때마다 새삼 이욱정 PD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기고는 했었다. 요리 프로그램의 연출이 되기 위해서 2년이나 요리 유학을 다녀왔다고 하며, 그러다 PD가 결국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레시피를 설명하며 요리를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순수하게 행복해 보였으니 말이다. 특히나 방송을 보면서 단순히 요리 과정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세계의 요리 인류들이 보여주는 과정이 있었기에 마치 여행 프로그램처럼 설레이는 기분 마저 들곤 했었다. 그렇게 짧아서 너무 아쉬운 방송들이 모여 한 권의 두툼한 책으로 탄생했다고 하니, 소장 가치는 물론 방송을 보지 못한 이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언젠가부터 집밥 열풍이 뜨거워졌다. 흰 쌀밥과 정갈하게 차려진 반찬이 나오는 한식당들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끼니는 챙기고 살자는 취지의 먹방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모아 요리하는 과정 자체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고, 어떤 방식의 조리방법이 쓰이는지 알려면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이렇게 건강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려는 킨포크 라이프를 지향하기 시작한 건 어쩌면 점점 삭막해지는 도시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들고, 그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요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냄새 물씬나는 삶으로 만들어준 <요리인류>를 통해서 이 겨울, 따뜻한 집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 어떤 요리 책보다 입맛 당기게 만들어주고, 그 어떤 여행 책보다 떠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멋진 책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