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본인에게는 역사, 문화 등의 과목들은 이해하는게 아니라, 암기해야만 시험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과목이었다. 그래서 외우는걸 잘하지 못하는 나에겐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이었다. 그에 반해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TV 프로그램은 너무 재미있었다. 당시 시대적 삶의 방식, 문화 등에 비추어 탄생한 하나의 건축물, 어떤 장소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들을 듣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외에도 음식, 상식, 과학 등 다양한 소재 에 대하여 출연자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이 흥미로워서, 매주 본방송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중요한 금요일 밤 시간을 할애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유시민은 알쓸신잡 시즌마다 출연했었는데, 그래서인지 본인에게는 정치인보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박학다식하고 친근한 작가님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현재 시즌3까지 방영됐다. 매시즌마다 출연자들이 교체됐음에도 불구하고, 유시민 작가는 진행자인 유희열과 매 시즌을 함께했다.)
올해 초 이후 급속도로 퍼진 코로나19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대유행 중이라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는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책을 잘 보지 않던 본인이지만, 여행이 주는 즐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저자를 믿고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저자에 대한 믿음만큼 책은 만족스러웠다. 이 책의 구성은 ‘알쓸신잡’의 진행방식과 유사했다. 무엇보다 건축물, 미술관, 공원 등 도시의 “텍스트”보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인 “콘텍스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이 좋았다.(‘텍스트’, ‘콘텍스트’라는 단어는 이 책에서 저자가 정의하여 사용한 단어이다)
또한, 맛집을 추천하고, 여행지 사진들로 도배하거나, 여행 꿀팁을 전수하려는 보통의 여행책과는 다른 전개 방식이라 좋았다. 귀한 시간을 내서 온 여행지에서, 2-3시간을 기다려 핫플에서 인증샷을 찍고 SNS에 남기는 것으로 끝나는 여행은 나의 여행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 제한된 여행시간을 기다림으로 낭비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유명한 곳은 꼭 가봐야 한다는 한국인의 정서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이나 인터넷 카페에서 추천한 맛집과 장소에는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마다 내가 여행을 온 건지 한국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본인은 책에서 소개하는 4개의 도시 중에서 직접 가본 곳은 ‘로마’ 뿐이다. 3년 전 로마 여행을 위해 영상물로 로마의 역사적 배경들을 습득했었고, 현지에서는 투어 프로그램을 활용해 “콘텍스트”를 이해하는 여행을 했었다. 큰 동선만 계획하고, 궁금한건 스마트폰에서 바로 찾아보며, 가봐야할 장소와 맛집 등은 세부적인 일정은 여행이 주는 ‘뜻밖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두는 여행. 저자가 책에 기록한 여행 방식과 비슷해서, 당시 함께 여행했던 친구와 로마에서 느꼈던 기억들이 이 책을 읽는 와중에도 수차례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로마에서의 현지 투어 프로그램에서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책을 통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건축물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 도시의 역사와 그 도시에 영향을 주었던 당시의 문화와 인물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특징을 가지게 된 이야기들을 더욱 세세하게 알고 난 지금, 다시 로마를 여행한다면 같은 장소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로마 이외에도 저자는 3개의 도시를 추가로 소개해두었다. 멋있게 나이 들지 못한 미소년 ‘아테네’, 단색에 가려진 무지개 ‘이스탄불’. 인류문명의 최전선 ‘파리’. 아직 가보지 못한 나머지 위 도시들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여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 로마를 “뜻밖의 발견을 허락하는 도시”라고 표현한 저자의 관찰력에 책을 읽으며 수차례 공감했듯이, 나머지 3개 도시들을 가보진 못했지만 각자가 매력들을 적절하게 함축하여 표현한 도시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언젠가 코로나19가 끝나고 여행을 할 수 있게 되는 날, 버킷리스트에 담아둔 위 도시들로 떠나기 전, 다시 이 책을 꺼내들어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여행을 함께 하리라 다짐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