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읽게 되었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에 이어 이번에는 제2편인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1편이 시안에서 돈황까지의 답사 여정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만든 것이라면, 이번 책은 돈황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고, 첫번째 이야기는 돈황 막고굴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는 돈황문서를 가져간 사람들(중국에서는 이들을 도보자라고 부르고 있음)과 막고굴을 지킨 수호자의 이야기였으며, 세번째는 실크로드의 관문으로서의 돈황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첫번재 이야기인 돈황 막고굴에 대한 이야기 관련해서는, 내게 인상깊었던 것은 저자가 다음과 기술한 내용인데, 이는 "각 석굴은 봉헌하는 사람의 정성과 재력과 참여한 화가의 솜씨를 최대로 구형해 조성했을 것이고, 하나의 아름다운 석굴은 다음 석굴의 기준이 되었을 것이며, 석굴마다 경쟁한 듯한 인상을 주는데, 결국 경쟁이 문화를 더 높이 고양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더하여, 저자가 언급한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 내게 와 닿았는데, "우리 석굴암의 구조와 불보살상 배치와 조각이 얼마나 완벽한 것이었는지, 석굴암의 구조는 견고하기로 유명한 화감암으로 인공 돔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인도 및 중국에 있는 석굴사원의 전통을 우리 자연에 맞게 한국적으로 구현해 낸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내용은 거대한 규모의 중국 문화유산과 차별화된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상깊었던 대목이었다.
두번째 이야기는 돈황문서를 가져간 사람들 관련해서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돈황문서를 가져간 사람들에 대해 악마와 같은 약탈자라는 비난이 있으나, 오렐 스타인 등 도보자들은 모두 그들의 나라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막고굴의 유물들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및 일본 등으로 흩어지는 과정은 세계 문화사의 일대 사건으로 지금까지 그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도보자들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이 유물들은 훔쳐간 것이 아니라 구입한 것이며, 이 문서들이 서양으로 오게 됨으로써 오히려 무사히 보존된 것이라고, 그리고 그대로 두었다면 분실 등으로 사료로서 가치를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 문서들이 서양에 보존되고 연구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돈황에 대한 연구가 "돈황학"으로 설립될 수 있게 되었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물론, 돈황학이 세계적으로 발전된 학문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이들이 가져간 유물들이 그대로 중국에 있었다면 돈황학의 정보는 지금보다 훨씬 빈약하거나 아예 없었을 수도 있다라는 평가도 있다. 다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중국인 고고학자가 영국에 와서 한 수도원의 유적지에 있는 중세 필사본의 비밀서고를 발견한 뒤 그곳의 관리인에게 뇌물을 주어 그 책들을 몰래 북경으로 빼돌렸다면 과연 영국인의 감정이 어떠했을까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라는 내용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호자인 장대천, 상서홍 및 한락연 관련해서는 그 문화유산이 소재했던 곳에서 그 문화유산을 보존하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특히 "무기징역을 산다는 각오로 들어가라"라는 제목이 인상깊었다.
세번째 이야기는 실크로드의 관문으로서의 돈황의 이야기인데, 돈황으로 가는 길은 멀고 실크로드로 가는 긴 여정이 있어 대개 명사산과 막고굴 답사로 그치게 되는데, 돈황에는 막고굴 이외에도 유명한 천불동이 여럿 있으며, 대표적인 것이 서천불동, 동천불동, 안서 유림굴이고 저자는 특히 안서 유림굴이 중국의 석굴사원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석굴로 소개하고 있으며, 특히 여기에는 우리 고려 불화와 연관이 깊은 서하 시대의 훌륭한 벽화가 있어 답사내용을 소개하였다. 더불어, 돈황은 실크로드의 관문이지만, 서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양관 및 옥문관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실크로드로 가는 두 관문으로서 양관과 옥문관이 옛날에 서역으로 가는 대상과 구법승들이 여기를 지나고부터는 오직 죽은 자의 해골과 짐승의 뼈만을 이정표를 삼아 사막을 건너갔다는 내용을 언급하며, 제3권에서 양관과 옥문관이 실크로드 여로의 서막이라는 점을 언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