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 음악등의 분야에 재주가 없어서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학교를 졸업한 후 한적이 없다.
그래도 미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진중권의 서양미술가(인상주의편)을 독서 연수로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런데 책을 선택하고 나서 보니 진중권교수가 이미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기획은 '고전예술', '모더니즘', '후기 모더니즘'를 다룬 세권의 책이 완성된 상태에서 저자가 고전미술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서술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고전예술과 모더니즘 중간에 인상주의편을 새로 집필한 것을 알게 되었다. 미술사의 역사적 순서로 보면 고전예술을 읽고 인상주의 편을 읽었어야 하는데 초등학교를 건너뛰고 중학교에 바로 입학 한 것 같아 좀 아쉬운 점이 있다. 그래도 다른 책등을 통하여 고전예술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고 이 책에서도 앞부분에서 고전예술을 대략 설명하여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다음 기회에 고전예술편을 읽고 싶다.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은 성격이 너무나 달라, 둘 사이에 건너뛸수 없는 심연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미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진공 속에서 저 홀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모더니즘의 탄생을 위한 조건들은 실은 일찍이 19세기 부터 조금씩 마련되었다.누늦어도 19세기 중엽부터 프랑스 미술계 에서는 그동안 미술계를 지배해온 관학 예술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다. 아카데미에 대한 비판은 물론 수백년 동안 유지되어온 고정미술의 이념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사실주의자 쿠르베가 시작한 이 반항은 인상주의 작가들에게로 그대로 전해진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아카데를 통해서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 했다. 하지만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를 거치면서 아카데미즘은 외려 진정한 예술가라면 마땅히 거부해야 할 고리타분한 전통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이런 변화를 낳은 이유는 19세기가 격동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민혁명은 유럽의 정치풍경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곳곳으로 퍼져가는 산업혁명은 유럽의 도시풍경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 시기에 과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의식은 실증적으로 변해갔고, 사진술에 힘입어 그들의 지각은 탈 아우라적으로 변해갔다. 한마디로 우리가 후에 '모던'이라 부르게 될 시대의 원형이 바로 이 시기에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 경제 정신 기술의 영역에서 일어난 이 거대한 변화는 당연히 사람들의 미의식에도 영향을 끼쳐, 미술의 양식마저 변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1850년을 즈음하여 사실주의를 필두로 과거의 예술과 구별되는 새로운 예술 언어들이 줄지어 탄생하게 된다.
19세기에 들어와 전통적인 아름다움은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 새로운 상황에 예술가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먼저 쿠르베와 같은 사실주의자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려 했다. 그들은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 했다. 현실이 추하면 추한대로 묘사해야지 그것을 미화해서는 안된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미'가 아니라 '진실'이기 때문이다. 사실주의자들은 신화 성서 역사 속의 '허구'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을 그리려 했고, 그런 그들의 눈에 비친 당대의 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그들은 추한 현실로 눈을 돌렸고 그로써, '아름다운 가상' 이라는 르네상스 이래의 고전미술의 이념을 무너뜨렸다. 인상중의는 사실주의의 정신속에서 탄생했다. 사실주의자들은 '진실'을 추구했지만, 스투리오 안에서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젤을 들고 야외로 나간 인상주의자들이 어쩌면 그들보다 더 사실주의적이었는지 모른다. 사실주의자들이 사물을 '아는'대로 그렸다면, 인상주의자들은 실제로 '보이는'대로 그리려했다. 그들은 색은 곧 빛이므로 고유색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물리적 색체와 실제로 지각되는 심리적 색체가 서로 다름을 알았다. 인상주의자들은 빛을 그림으로써 사실주의자들이 여전히 고수했던 '색에 대한 형의 우위'라는 고전적 원칙을 무너뜨렸다. 인상주의 화면에서 형의 명확성은 산란하는 반사광 속에서 와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