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어떤 힘이 있을까. 예술적인 지식과 미적인 감각이 부족한 내게 각종 전시회나 미술관 방문은 사실 인생의 힘이 될만한 특별한 의미부여가 된 경험은 없었다. 그저 상식을 채워넣기, 문화생활을 한다는 위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당연히 나에게 어떤 종류의 힘을 불어넣어 준 경험도 딱히 없다.
보통 명화라고 하면 거기에 관한 해석이 이미 정답처럼 존재한다. 따라서 그 내용을 모르면 알고 숙지해야하는 숙제같은 대상이고, 남들에게는 상식인 내용을 내가 모르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이 책에도 응당 알아야할 명화와 그에 대한 해설, 배경 설명이 있기는 했으나, 그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그림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적어서 그그림을 보고서 받아야하는 생각, 느껴야 하는 감정이 강제로 주입받는 느낌과 과정이 적어 좋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안하는데, 그런 감정이 안느껴지는데 하는 거부감은 크지 않고 대신 그림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내생각을 채워볼수 있었다.
야근이 잦았던 최근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휴식시간에 또다른 책을 읽는게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책의 첫장,"오늘 하루도 수고한 당신을 위한 밤을 위한 테라스"라는 제목에 이끌려 넘겨 본 페이지에는 빈센트 반고흐의 그 유명한 "밤의 카페 테라스"가 있었다. 자주 보던 유명한 그림인데, 순간 나는 집안일이 쌓여있는 답답하고 좁은 집에서 벗어나 밤하늘엔 별이 빛나고 시원한 밤공기가 볼을 간지럽히는 분위기 좋은 조용한 야외 테라스의 테이블로 이동한 듯 했다. 코로나로 사람간의 접촉과 외출이 무서워진 요즈음 최소한 그런 서늘한 밤공기를 안심하고 무심히 즐겼던 지난 날 중 어떤 즐거운 기억을 소환시켰던 것은 노란 불빛의 색채가 따뜻함을 불러일으키고, 무엇보다 전면의 테이블이 비어 사람들로 꽉차지 않는다는 점은 옆 테이블 사람들의 말소리로 시끄러울 염려나 마음이 다시 북적일 위험요소를 삭제해주었기 떄문이었으리라.
마음으 쉼을 선사해준 또하나의 그림은 프레데렉 레이턴의 "타오르는 6월"이었다. 주황색의 얇고 부드러운 옷만 걸친 한 여인이 몸을 웅크린채 아주 편안한 얼굴로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 그림이다. 주황색의 색감과 보기만해도 편안한 여인의 얼굴과 자세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마음이 사르르 풀어진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특히 아이를 낳고 나서 나혼저 저렇게 마음편히 숙면을 취해본적이 언제였나 싶다. 나도 기지개 한번 피고 정신없이 곯아떨어지고 싶은 마음을 그림으로 대신 한 번 힐링해본다.
윌리엄 테너의 "전함 테메레르" 그림도 비슷한 느낌으로 힐링이 되었다. 새빨간 석양이 비치기 시작하는 일몰 무렵 바닷가 한가운데 멈춰있는 배 한척. 저 배도 오늘의 항해를 다 끝내고 쉬고 있나보다. 내가 저 바닷가에 떠있는 배 갑판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전쟁같았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듯한 시간을 잠시 가질수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이중섭화가의 "해와 아이들"은 포근하면서 애잔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이중섭 화가의 그림은 가장 처음 접했을때는 벌거숭이 아해들의 밝고 천진한 표정으로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화가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가족과 떨어져 지독한 고독감과 가족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림 속 아이들이 조금 달라보였다. 내가 출근했을떄 어린이집에서 날기다리며 노는 아이 같기도 하고, 요즘은 자주 연락하지 않는 기억속 어린시절 친구같기도 하고.. 그냥 아이들이 아니라 그리움의 대상, 보고싶은 존재들로 치환되어 투영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끄는 그림 몇가지로 정리해보니 그 그림들 사이에는 "힐링", "쉼","휴식"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림을 통해 심리를 파악하는 그림심리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요즘 내 심리상태가 복잡함, 번잡함, 바쁨, 힘듦 같은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육아와 직장일, 가사일, 사회관계 안에서 치여서 매일 정신없이 살다보니 나 자신르 돌아볼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림의 힘이라는 것이 거창하지는 않다. 그림을 보면서 당장 뭔가를 느껴야하고, 변화가 생기거나, 외로움이 당장 치유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잠시 일상을 멈추고 마음을 환기하는 정도의 작은 힘이었지만,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