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형식의 희곡인 이 책은 작가 특유의 위트 섞인 문장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에 그 자리에서 술술 읽혔다. 마치 “최후의 심판” 그림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기도 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던 한국 영화 “신과 함께”도 생각났다. 중간 중간에는 프랑스의 문화를 풍자하는 (예: 주당 근무시간을 맞춘 의사로 인해 아나톨이 죽게 되는 아이러니한 사항 등) 흥미로운 내용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나는 수만가지의 생각들이 머릿속에 얽히고 설키며 생각의 나래를 펼쳤다. 특히 그 중 크게 두 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첫째, 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일까 정해진 운명일까 또는 각자 주어진 운명을 우리 스스로가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둘째, 어떻게 살아야 사후세계에 잘 도달할 수 있을까?
먼저 이 책에서 재판위원들은 우리 모두가 태어나는 순간 유전 25%, 카르마 25%, 자유의지 50%의 세 가지 영향 하에 놓인다고 하였다. 내가 선택하는 하나하나가 이 영향력 내에서 상호간 영향을 받으며 결과를 발휘한다. 그렇다면 그 결과가 내가 나아가는 방향과 부합하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타고난 성향과 관심사 등에 맞추어 자유의지에 의해 지금 은행원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직업이 아닌 다른 직업이 내 운명이었을까?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하지만 저 비율로 따지면 유전과 카르마를 합쳐야 겨우 현생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의지”의 퍼센트와 동일하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현실에서의 내 의지가 내 삶을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기운을 순응하기 보다 자라나면서 받는 경험치를 근거로 개척하는 삶을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이드를 생각해보게 한다. 작가는 검사를 통해 다음 질문들을 한다. (1) 피고인이 자신의 재능을 망각했는가? (2) 피고인이 위대한 러브 스토리를 그르쳤는가? (3) 그렇다면 그것이 의식적인 행동이었는가? (4) 그는 아이들을 잘 교육시켰는가? (5) 그가 옳은 배우자를 찾았는가? (6) 그는 좋은 판사였는가? (7) 피고인은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날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 이 과정에서 검사가 지목한 아나톨의 가장 큰 죄는 바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지 않은 죄 및 안락함을 추구한 죄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것은 인간이라면 한 번쯤 살아가면서 되새겨야 하는 질문들로 생각된다. 지금 나는 상기 질문들에 자신 있게 YES라고 답할 수 있지만 과연 내가 사후세계에서 영적인 심판을 받게 될 때 긍정적인 판결을 받을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한편 특히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구절은 “다음 생을 위한 준비”라는 제목의 마지막 챕터였다. 환생을 하지 않고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이려면 사후세계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심판을 받고 지은 죄가 더 클 경우 환생을 한다. 오히려 착하고 후회없이 살았으면 다시 살 기회를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대라서 “아차!” 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죄를 지으면 회개를 하거나 징벌 차원애서 지난 생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진 채 리셋되어 다시 삶을 살라는 의미인 것 같다. 작가만의 발상전환적 사고에 감탄을 했다. 그리고 환생을 하는 과정에서 새로 살 삶의 성별, 부모, 성격, 직업, 강점, 다음 생의 죽는 날 등을 망자가 결정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또한 심판을 하고 있었던 가브리엘이 아나톨 대신에 환생을 하고, 아나톨이 가브리엘의 자리를 대신하여 사후세계의 재판장 자리를 맡는 반전의 결말이 새로웠다.
과연 내가 만약 환생의 대상이 된다면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을까? 지금과 반대되는 삶을 살고 싶을까 아니면 지금과 같이 살되 다른 마음가짐(자유의지)로 살고 싶을까? 계속되는 철학적 질문의 홍수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진실되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겠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에는 이러한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pp106-107).
가브리엘: (생략) 가장 최근에 지상에 다녀온 소회가 어떤가요? (중략) 후회는 없어요? 회한이나, 실망은?
아나톨: 있죠. 너무 일찍 죽은 게 아쉬워요. 멋진 인생을 조금 더 살 수 있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