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서두에서 저자는 모든 사태의 전개를 어두운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반복되는 역사를 이해하려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전제도 역사는 현대라는 용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현대는 우리의 시대를 과거와 단절시키려는 의도가 내포된 단어이다. 현대라는 단어가 과거를 부정하고 더욱 진보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어찌보면 헤겔의 변증법처럼 정반합의 연속이었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비단 21세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계속되며 역사가 진보해온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저자는 역사가 진보해온 것이 아니라, 기술만 진보했을 뿐 역사는 계속 되풀이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늘날 전자통신은 회사 내부의 부서들이 비대면으로 기능하도록 하였고, 심리적 부담없이 잔혹한 일들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능력주의는 서로 경쟁을 부추기는데, 경쟁에서 도태된 자들은 언제든지 이 사회에 위협적인 단체로 변모할 수 있다. 세계 여러지역에서는 종교적, 민족적 갈등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지만 미디어에서는 모든 국제 문제에 해결책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과거 역사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즉 전자통신 등 기술과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시대에 오히려 그런 기술을 활용한 범죄, 사회에서 도태된 계층의 잠재적 위험 등이 과거와 같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중국,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현실주의 사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례로 현실주의자인 처칠은 반공주의자였지만, 히틀러를 억제하기 위해서 스탈린과 동맹을 하기도 한 것이다.
현실주의자인 처칠은 저자가 가장 이상적으로 보는 현실주의 정치인이다. 처칠이 영구의 식민 역사에 대해 서술한 ‘강의 전쟁’을 보면 처칠의 현실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처칠은 이집트인이나 흑인을 묘사할 때 지리적 숙면주의에 바탕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식민지 지역과 인종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묘사가 강할수록 오히려 정복자의 영웅주의가 강화되었고, 고든을 필두로한 영국 군대가 식민지에 인프라 건설 등을 통해 번영을 이루는 결과를 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평화와 번영이라는 결과가 식민지배 등의 개입을 도덕적 정당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래는 항상 불확실성으로 가득한데, 역사를 무시할수록 미래에 대한 망상은 커진다. 러시아와 중국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 실패는 러시아의 지리와 문화, 중국의 과거 역사를 무시한 결과이다. 따라서 역사적 기억상실증을 막기 위해서는 고전을 활용해야 한다. 마이카벨리는 사람 사는 곳이면 고대에 전례가 존재한다고 말했고, 공자는 진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고대를 숭배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손자병법에 대해서 병법서라기보다는 전쟁을 필요악으로 인식한 사람이 쓴 철학서라고 평가한다. 손자는 전쟁의 최고의 미덕은 싸우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사고를 하여야 한다. 손자에 따르면 사령관은 ‘배고픈 사람처럼 계획을 짜고 계산’해야 한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우위를 얻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스파이와 같이 모든 간계가 용인되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
손자의 이러한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서술한 투키디데스와 결을 같이 한다.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 군대의 침략 당시에 아테네의 도시를 구하지 못하여 불명예를 얻었고, <필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투키디데스는 인간의 이기심에 초점을 맞추고, 이기심이 노력을 낳고, 노력은 선택을 낳는다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고대 사회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오늘날 국제정치와 같이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였고, 아테나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한 것은 결국 동맹 도시국가들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투키디데스가 말한 것과 같이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고, 국가들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다. 특정 국가의 입장에서 경쟁 국가를 불량국가라고 지칭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이상주의에 대한 비판은 현실주의적이며 동시에 도덕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는 오늘날의 정치가들이 투키디데스가 설명한 이기심을 바탕으로 세계가 통치된다는 것을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이 복잡하고 불확실할수록 가장 간단한 원칙으로 이해하려 시도한다면, 체계적으로 이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경제학에서도 인간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를 하는 인간으로 가정하고 복잡한 경제현상을 분석하는 것처럼, 국제정치에 있어서도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국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복잡한 국제정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