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존덕정 "만천명월주인옹 자서"
통치자로서 정조의 철학이 밝게 드러나는 천하의 명문으로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재위 22년 47세 땐 쓴 이글은 제목만 보면 군주의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위상을 강조한 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글 내용을 보면 자신이 만천명월의 주인인 근거와 그렇게 때문에 임금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피력해 놓았다.
나는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우친 바 있다. 달은 하나 뿐이고 물의 숫자는 1만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1만 개면 달 역시 1만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 뿐이다.
근래에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쓴 것이다.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 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은 것과 같다.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 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 친다. 거이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택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이 만천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내가 머무는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 이라고 써서 나의 호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는 12월3일 이다.
창경궁 자경전 "자경전 기문"
궁궐지에 실려있는 순조의 "자경전 기문"에는 자경전에서 본 사계절의 아름다움이 그림같이 묘사되어 있다.
자경전에서는 궁전의 사방을 조망하는 경치가 아름답다. 봄볕은 잔잔하고 맑은 기운은 환히 비추며 돈다. 꽃은 비단 같은 정원에 어울려피고, 버들은 금 같은 못에 일제히 떨치고 있다. 앵무새는 조각한 새장에서 말을 배우고, 꾀꼬리는 좋은 가지를 택해 소리를 보내고 있다. 붉고 푸름이 서로 섞여 흩어지고 어우러지며 만 송이 꽃술은 모양과 빛을 발하고 있어 실로 궁궐 정원의 번화함을 맘껏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궁전의 봄 경치다.
난초 끓인 물에 목욕하고 쑥꽃을 꽃으니 이는 궁중에서 예부터 하는 일이란다. 꽃다운 풀에 앉고 무성한 수풀을 그늘로 하니 봄꽃이 향기를 토하는 것보다 낫다. 천도복숭아가 열매를 맺으니 열매는 삼천개라, 아름다운 나무에 매미 우미 울음소리 가득하다. 잎을 천 개의 줄기에 실으니 향기가 자욱하다. 맑디맑은 연못은 또한 마치 살아 있는 물 같다. 저원가에 석류꽃 나무 수십 그루를 심으니 하나하나 붉게 익었고 계단위에 기이한 풀 백여 포기를 심어두니 그릇마다 기이하고 오묘하다. 삼복더위에도 더운 기운이 침범하지 않는다. 궁녀가 부채 부치는 수고를 하지 않게 하고도 자연히 맑은 바람이 옷깃을 씻어준다. 이것이 궁전의 여름 경치다.
수풀 단풍이 비단처럼 펼쳐 있고 빼어난 국화가 어울려 향기를 낸다. 가을 달은 휘영청 밝게 빛나며 비추인다. 흰 이슬 버선에 스며드니 넓은 정원이 낮과 같다. 빗물이 스며든 것을 모아서 맑은 기운을 띄운다 .이에 온 나라가 풍년을 노래하고 만백성이 함께 즐거워한다. 올해는 작년과 같고 내년도 올해와 같으리니 해마나 이와 같으리. 들에는 배 두드리는 소리 들리고 조정에는 풍년 진상을 청한다. 이것이 궁전이 가을 경치다.
궁전의 나무는 구슬을 맺어 여섯 가지 꽃이 다투어 춤추는 것을 보고, 궁궐의 비단은 선을 더하여 동짓날의 처음 돌아옴을 다투어 축하한다. 임금의 생일이 돌아오면 만세 삼창 기원 소리 높이 오른다. 찬란한 빛과 상서로운 색에 관과 패물이 쟁쟁하다. 사람들은 채색 대오를 이루고 조화가 경계에 넘친다. 이것이 궁전의 겨울 경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