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표지를 통해 그저 마냥 가벼운 소설로만 생각했었다. 얼핏 마치 어른 동화인가 생각도 되었다. 생각대로 재미있고 참신한 소재와 이야기 였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사실 책 제목인 보건교사 안은영이라고만 하면 딱딱한 느낌이 강한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은것도 반전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내가 느끼기엔 두 가지 것이 있다.
첫째, 평범한 보건교사로 보이는 듯 하나 안은영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장난감 칼로 처단하며 다닌다. 이 책을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젤리의 출현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상념과 에너지들을 책에서는 젤리라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색다르고 재밌는 표현처럼 다가온다. 그러나그녀는 애석하게도 여타 히어로들만큼 무적이 아닌지라 방전된 기를 보충해야만 한다. 그녀가 무적 히어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냥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을것만 같은 인물이 보이지 않는 젤리를 처단하고 약점이 있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러한 고된 작업을 불평없이 해나간다. 그녀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만큼 생색내기를 좋아하는사람이 또 있을까하는 사람인지라 안은영의 태도는 묘한 감동을 주었다.
그녀처럼 보이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있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그래도 무탈하게 돌아가는게 아닐까. 세상이 공평하지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일에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인정해줘야 하는 값어치있는 일일것이다. 그래도 홍인표라도 만나서 방전된 기를 언제든지 마음껏 보충할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내 주변에도 나의 기를 충분히 보충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범상치 않은 인물들 때문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중학교 동창 김강선이다. 중학교 때부터 젤리가 보였던 안은영의 이상한 말과 행동에도 조용하게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줬던 김강선.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크레인이 비싸서 목숨을 잃게된 비극적인 인물이다. 실제로도 그러한 비슷한 사례는 아주 오래전 부터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예전에 지하철 도어락을 수리하다가 목숨을 잃은 갓 스무살 청년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온다. 안전장치만 제대로 갖추었었어도 죽지 않았을텐데. 회사에서는 제대로 지원조차 해주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 이러한 소식들이 들려올 때 참 마음이 아프다.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엔 그런 이야기가 숨겨져 있고,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사건이 터질 때는 흠칫하면서도 결국 잊히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사람에게 값을 메기는 우리 사회를 꼬집고 있다.
이 외에도 소설에는 안 좋은 생각들이 젤리로 이어진다든가 학교폭력, 역사의식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젤리라는 참신한 소재로 무거운 이야기도 마냥 무겁게 풀어내지 않은 작가의 글솜씨 덕에 재미있고 술술 읽혔다. 작가 정세랑은 등장인물의 이름도 실제 자신의 주변이 있는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 마치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이 이 소설을 오로지 쾌락만을 위해 썼다고도 밝혔다. 그래서일까.
마치 매회 에피소드들이 마치 만화처럼 마냥 무겁지 않게 통통 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재밌겠다 생각했는데 넷플릭스에 보건교사 안은영이 정말 제작되어 있었다! 소설에서는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뒷 이야기까지 나와있어서 두 주인공인 안은영과홍인표의 이야기도 다루어진다. 역시나 해피엔딩이지만 말이다. 젤리를 처단하느라 방전된 기를 홍인표의 타고난 보호막으로 보충해준다. 정말 둘은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인표가 장애가 있을지라도 안은영은 홍인표의 매력적인 보호막 때문에 그를 더욱 특별히 여긴다. 책을 다 읽었을땐 재미있고 행복한 소설이다라고 느꼈지만 소설 내용을 곱씹을수록 참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