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 쓰인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천문학적 지식과 그를 쉽게 알려주기 위해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를 덧붙인 내용으로 읽는 내내 감탄을 자아냈다. 전에 언뜻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한 게스트가 이 책을 보고 웬만한 천문학 도서의 근간이 되는 책이라고 설명했던 기억이 났다. 최근 들어 뇌과학과 진화 심리학 쪽 책을 몇 권 읽었던 터라 과학도서에 재미를 느껴 접근하기가 어렵진 않았다.
워낙 별 보는 걸 좋아하는 터라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칼 세이건은 친절한 작가였다. 그가 방대하고 박식한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니란 건 확실하다. 읽을수록 칼 세이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천문학의 재미를 알려주고 싶어 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구와 생명체의 탄생, 태양계에 대한 설명, 은하와 별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진화와 유전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론화했던 각 시대별 과학자들과 인문학적 소양들. 정말 방대한 지식들이 책 속에 흘러내렸다. 물론 뼛속까지 문과 예체능과 인 내게 어려운 용어도 많았다. 한 번 읽은 걸로는 칼 세이건이 전하고 싶은 과학적 내용을 완전히 받아들이긴 힘들다.
웃기려고 쓴 것도 아니지만 내 웃음을 자극하는 몇몇 포인트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혹자는 빛보다 생각이 빠르다고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거라며 단칼에 자르던 말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내가 과학에 느끼는 매력은 이런 단호함이다. 맞고 틀림이 확실하며 절대적인 사실은 없다는 점이다. 언제든지 지금의 사실은 미래에 바뀔 수 있고 과학은 증명만 된다면 지금 불변의 진리라고 믿던 사실도 반박 없이 받아들인다.
처음엔 온갖 천문학적인 지식만 나열된 책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물론 제목이 <코스모스>인 만큼 천체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긴 한다. 그러나 인류가 과학을 알아가면서 하늘을 숭배의 대상에서 관측의 대상으로 바꾸고, 지구 중심에서 태양 중심으로 변하는 내용을 알려주기까지의 무수히 많은 과학자들과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또 생명에 관한 내용도 많다. 지구에 생명체가 나오기까지와 지능을 가진 인간이 탄생하기가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는지 등등. 워낙 방대한 내용이라 하나하나 설명하기는 애매하다. 확실한 건 읽으면 읽을수록 칼 세이건의 박식함과 유려한 문장에 감탄하게 되었다.
책에는 몇몇 컬러 사진과 그림들도 같이 들어있다. 80년대라 그런지 사진도 사진이지만 상상에 의한 그림도 많았다. 어릴 적 많이 본 과학 상상화 같기도 하고 sf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천문학자들이 우주에 대해 배워 갈수록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존재에 허무감을 느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 역시도 이 커다란 지구 안에 한낱 작은 점 같은 존재로 느낄 때가 있다. 지구는 태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작고, 태양계는 말도 안 되게 거대한 은하의 귀퉁이에 존재하며 우리 은하는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일 뿐이며 이 모든 걸 포함한 우주는 아직도 팽창 중이다.
이 거대한 코스모스에 인간은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가. 티끌이면 다행이다. 티도 안 나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이다. 당장 지구가 터진다고 해도 우주 전체로 봤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다름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인간을 그렇게 작은 존재로 보지 않았다. 이 우주에 지적인 능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은 생각보다 많기도 하고 어느 외계 생명체이든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인간은 흔치 않으며 전 우주에 '단 하나'이다.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 생물이 생겨나고 많은 변수에 의해 직립보행하고 두 손을 사용하는 인류가 나타나 우주를 탐험하기까지 인류는 수백만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주의 탄생은 수백억 년으로 추정되니 이 넓은 우주에 우리가 가장 지적인 생명체이거나 유일한 지적 생명체일 확률은 낮다.
책의 끝 무렵에 칼 세이건은 위와 같이 말한다. 두 문장이 나를 찌르르 울렸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나하나 모두 귀중한 존재이다. 칼 세이건이 전쟁을 겪은 세대여서 그런지 핵무기에 대한 불안감과 인간이 스스로 문명을 해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걸 볼 수 있었다. 어렵게 이룬 문명은 이제 무기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과학의 발전은 몇천 년이나 퇴보할 수도 있다. 이는 이 전 역사에서도 몇 번 반복되던 일이다. 뛰어난 과학자가 있었으나 시대에 흐름에 맞지 않아 사라지기도 하고, 그들이 쓴 훌륭한 책들이 불살라 없어지기도 했다. 이들이 모두 살아서 과학적 발전을 이루었다면 지금보다 몇 백년은 발전을 앞당겼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