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하면서 제일 먼저 접하는 것이 항공기이다. 항공기를 타면 새로운 도시로 간다는 설레임에 들뜨지만 항고기를 타고가면 겪는소소한 경험은 그냥 지나치기 일수였다. 물론 더큰 경험을 겪을수도 있지만 말이다. 우선 책 서두에서도 기술했듯 하이재킹 (Hijacking)은
어원이 미국 서부시대 강도가 마차를 털기 위해 마부에게 Hi, Jack이라고 불러 마차를 세우고 강도짓을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사실도흥미롭다. 당시 흔한 이름이 Jack 이라서 강도들이 Hi, Jack 이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하이재킹이 발생하면 안전을 위해 납치범의 요구 수용하는 것이 표준지침이라는데 9.11 테러 이후부터 바뀌었다고 한다. 9.11테러이전에는 납치된 비행기에 대해 각국이 승객안전을 위해 영공진입 및 착륙에 우선권을 두었으나 테러이후에는 영공진입 거부하고 조종사의 화장실은 조종실입구에 위치, 화장실사용시 승무원에게 알려야하며 승객이동은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메게하거나 카트로 통로 임시 봉쇄하는 통제를 가한다는 것도 세삼 처음 알았다. 60∼70년대는 하이재킹의 황금시대로 하이재킹은 행선지는 쿠바로의 망명목적으로 승객들은 안전을 걱정하지 않았으며 이후 하이제킹 사건중 항공지식이 풍부했던 일본의 오다쿠가 부실한 공항보안 제보에도 반응이 없자 스스로 하이재킹 시도하여 기장을 살해하자 하이재킹 방지를 위해 보안검사 도입되고 조종실의 일반인 출입은 금지되는 조치가 내려졌다고 한다. 보안검사는 특히 초기는 비용문제와 승객 거부감을 이유로 항공사들이 전수검사 법제화를 방해하다 시행된지 얼마되지도 안되었다. 아울러 하이재킹으로 에어마샬(=스카이마샬)이 탑승하기 시작하였으나 보안검색 강화등으로 현재는 없어졌으나 과거 우리나라는 1969년 북한에 의해 강릉이륙 대한항공 하이재킹발생 후 마샬 탑승하기 시작하여 1971년 월북기도자의 속초이륙 대한항공(포커 27기) 하이재킹시 마샬이 범인 사살하기도 하였다.
하이재킹으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한 사건, 사례는 우선 1969년 라파엘의 TWA 하이재킹으로 이탈리아 이민자 라파엘이 미국인이 되기 위해 해병대에 입대하여 베트남전쟁영웅이 되었으나 귀국후 월급 일부(200달러)가 횡령된 것을 알고 반환을 요구, 거부당하자 부대오피스 물건을 딱 200달러어치 들고 나온 것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자 무장하여 TWA를 이탈리아로 하이재킹, 이탈리아에서 영웅화되며 하이재킹성공한 사건과 1970년 팔레스타인해방전선의 스카이잭 선데이 사건으로 미국, 영국등 4대 비행기를 중동사막에 하이재킹한 사건, 그리고 1969년 적군파의 요도호 사건 : 북한망명을 과정에서 김포공항 착륙시 정부에서 평양공항으로 위장하여 생포하려했으나 실패하고 승객을 놓아주고 목적대로 평양으로 하이재킹한 사건이 있다.
항공기를 타다보면 하늘길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하였는데 이책에 잘 서술되어 있다, 정기 항로의 시작은 1900년대 플로리다 템파베이의 세인트 피터즈버그의 비료원료인 인산염을 템파까지 거리에 비해 긴 24시간 운송거리를 1914년 엘리엇이 비즈니스목적으로 2인용수상 비행기로 정기항로를 개설하여 25분으로 단축한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엘리엇은 상업성을 위해 미국최초 낙하산비행기 조종사 토니 제너스를 영입하고 시의 지원을 받아 5달러에 탑승권 판매하였으나 시의 운항보조금 중단으로 운임이 50달러로 오르자 파산하였다. 정기항로의 시작화 함께 장거리횡단의 시도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대서양 횡단이 성공하며 장거리 운항이 가능해졌다. 대서양 횡단은 1919년 부동산재벌 레이먼드 오티그가 대서양횡단에 2만5천달러 상금을 걸자 붐이 발생하였으나 대부분 항로이탈로 인한 연료부족 등으로 실패하며 7년이 지날때까지 성공하지 못하다가 1927년 찰스 린드버그가 “스피리트 오브 세인트루이스”를 타고 35시간 황단 성공하였다. 같은시기 프랑스 1차대전 영웅 낭주세와 콜리가 린드버그와 같은 시기 도전했으나 실패하였다. 대서양횡단에 성공한 린드버그는 25년뒤 극한 상황에서 다른 비행사를 기내에서 보았다고 고백하며 제3자 이론(극한 상황속에서 뇌는 자신을 도와줄 제3자를 만들어 내고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이론, 8천미터 14좌를 등반한 메스너도 탈진의 극한 상황속에서 다른 등반가를 만났다고 함)의 체험담도 공개하였다. 이후 대서양횡단에 이어 태평양 횡단도 성공하는데 태평양횡단은 호주 참전용사 킹스포드 스미스와 찰스 울름이 대서양횡단을 준비하다 린드버그가 성공하자 태평양횡단으로 도전대상을 바꾸어 서던 클로스로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게 되었다. 오클랜드에서 하와이, 피지를 거쳐 브리즈번을 횡단하는 11,585키로미터 횡단으로 두사람은 태평양 횡단 성공후 1934년에 찰스 울름이 태평양, 1935년 킹스포드 스미스가 벵골만에서 실종되었고 이에 1936년 호주는 시드니공항을 킹스포드 스미스 시드니 공항으로 변경하며 태평양 횡단을 기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