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이 드러났습니다. 대통령이란 작자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의 뜻을 저버린 채, 측근 최순실에게 대통령 권한을 갖다 바쳤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해 겨울, 촛불을 든 채 광화문에 나가 "박근혜는 물러나라"를 외쳤습니다. 국민의 뜻에 떠밀린 국회는 탄액안을 가결시켰고, 이듬해 3월에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의 파면을 공식적으로 선언합니다. 사악하기 그지없던 정권이 드디어 종말을 고한 것이죠. 박근혜 대통령이 구치소에 가던 날, 박사모들은 구치소 앞에 모여서 통곡했습니다. "마마,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정권에 그 지지자라고, 우리는 그들을 마음껏 비웃었습니다.
두 달 후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습니다. 취임사에서 문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우리는 아낌없는 지지를 바쳤습니다. 당시 최고의 유행어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였을 정도였지요. 사실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너무도 쉬워 보였습니다. 전임 대통령이 국가를 나락으로 빠뜨렸다 쫓겨난 마당이니, 기본만 해도 '성군' 소리를 듣게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문 대통령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지지층이 있었지요. 이제 정치는 그분들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일터로 돌아가 생업에 전념할 수 있으리라 싶었습니다.
그 희망이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부동산은 폭등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는 더 나빠질 수 없을 만큼 악화됐고, 미국과의 관계도 삐걱거립니다. 남북관계는 박근혜 정권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출산율은 기록적으로 떨어지는 중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현 정부가 무능하기는 해도 최소한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는 도덕적이라고 생가했서였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게 정의로운 세상이라면, 다른 영역에서 모자란 점이 있어도 얼마든지 양해해 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입시와 사모펀드, 가족재산 형성 등에 숱한 의혹이 제기된 조국 교수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도덕이라는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뜨렸습니다. 취임사와 달리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으며, 결과는 전혀 정의롭지 않았던 것이죠. 유시민 씨와 김어준 씨의 사례에서 보듯, 여기에 이의를 제기해야 할 언론과 지식인들은 정권의 부역자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지난 정권에서 맹활약하던 시민단체들은 이제 정권과 한몸이 된 채 침묵하는 중입니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한술 더 떴습니다. 소위 '문팬'이라 불리는 이들은 압도적 화력으로 인터넷을 점령한 채 정권의 모든 잘못을 비호하는 중입니다. 조국의 비리를 수사한다는 이유로 서초동에 모여 "조국수호"를 외치고, "정겸심 사랑합니다"며 울부짖은 건 역사에 남을 희대의 코미디입니다. 검찰조사를 받으러 온 조국 전 장관의 차를 닦아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박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며 울먹이는 박사모들은 참 순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은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실현됐습니다.
민주당은 한국 사회에서 신주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동일시하기 좋은 정치 세력입니다. 재벌, 강남, 금융, IT 등 한국사회를 사실상 지배하는 신주류의 밥그릇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아요. 심지어 같은 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적당히 합리적이고, 때로는 소수자 문제나 정체성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은 제스처로 세련되었다는 인상도 줍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세력이라는 정당성도 있고요. 그래서 자신은 실제로 기득권이면서도 기득권(구적폐)과 여전시 싸우고 있는 듯한 자기기만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