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베르나르베르베르의 "개미"란 책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 이 머나먼 프랑스 작가의 이름은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고, 기회가 되면 이 작가의 책을 다시 한번 꼭 읽어보고 싶었었는데, 그동안 바쁘게 살다보니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다 금번 독서통신 교재 선정과정에서 본서를 보고 망설임 없이 선택해서 읽어 보게 되었다.
본서는 국내에 발매된 것이 올 8월 30일인 최신작으로 따끈따근한데, 특이하게도 희곡으로 만들어져 독특한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집중하면 수시간 내에 완독이 가능할 정도로 분량도 짧은 편이고, 이해하기에 쉽게 쓰여졌음에도 정독 후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주인공이자 피고인은 폐암 수술 중 사망한 아나톨인데, 그는 생전 판사로 지내며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천국에 도착하여 재판을 받으며 생전 삶에 대한 평가를 받고 판결을 받게 된다.
천국에서는 재판장 가브리엘, 검사 베르트랑, 변호사 카롤린 3명의 법조인이 재판을 진행하게 되며, 증거물로는 대형 스크린에 전생의 화면이 떠오르는데, 리모콘으로 속도를 조절하고 화면이 되돌아 가기도 가능하다. 이 재판의 과정에서 아나톨은 피고인이 자신의 재능을 망각했는가?, 피고인이 위대한 러브스토리를 그르쳤는가?, 아이들을 잘 교육시켰는가?, 옳은 배우자를 찾았는가?, 좋은 판사였는가?, 다시 태어나야하는 의무에서 벗어날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 등 검사가 기소한 항목들에 대한 최종 판결로 삶의 형에 처해져 빠른 시간 내에 지상의 태아로 태어나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카르마 25%, 유전 25%, 자유의지 50%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며 새로운 삶의 형태를 결정하게 되는데, 새로운 인생에서는 남자로 태어날지, 여자로 태어날지 망설이게 되고 그 상황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남자, 여자로 태어나는게 좋다는 설전의 장면에서는 실소가 터져나오기까지 한다. 본서는 초반 설정과 등장인물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웹툰 원작 영화 "신과 함께"가 떠오를 정도로 구성과 메인 줄거리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보는 내내 프랑스판 "신과 함께"가 있다면 본서의 형태로 각색이 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프랑스에서는 2015년에 출간되어 이미 연극 무대에 올려졌다고 하니 프랑스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극장에서 신과 함께를 보며 느꼈던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이 책에서는 전생에 아무리 잘 살았다고 자부한들 천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다시 태어나야하는 형벌(?)을 받게 되지만, 신과 함께에서는 신들에 의해 선택받은 자만이 다시 환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주인공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감안했을 때, 다시 태어나서 사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형벌일까?를 생각해보면 쉽게 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천국이란걸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당연한 생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올라 다시 경험하기 싫다는 걱정과 우려가 큰 것인지는 잘 판단이 안서지만.. 이 책은 짧은 분량의 희곡 형식을 띄고 있다보니 네 명의 인물간 대화는 전반적으로 허술하게 느껴지지만 대화 속에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며, 흐름이 간결하고 위트가 많이 담겨 있다. 또한 인물간 대화 속에 다양한 사회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흡연, 범법 행위, 자신의 인생에 소홀히 한 점, 꿈보다 현실만을 쫒은 점, 사랑하는 이에게 용기를 내지 못한 점 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을 중심으로 얘기를 이끌어 감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마치 주인공을 자신에게 투영하여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듯하다. 다만, 천국의 판사인 가브리엘이 주인공 대신 환생하러 가는 설정으로 끝나는 결말은 다소 생뚱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많은 결점이 있는 것으로 심판을 받던 피쑝이 갑자기 판사 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의 형벌(?)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여러가지 면에서 장단점을 분명히 갖고 있는 책이긴 하지만 베르베르의 발칙한 상상이 맘껏 발휘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아울러 책을 다 읽고 난 이후 나는 천국의 기준으로 볼 때 과연 죄인인지 그렇지 않은지 상상을 해보았는데, 나 또한 대학 졸업 후 과연 내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었던 꿈에 대해서 잊고 살아왔고, 내 자신의 기준 보다 남의 시선을 더 신경쓰며 살아온게 아닌가 하는 후회, 아쉬움 등등 여러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처럼 코로나19 등으로 하루하루 조심스럽게 살아가야하는 시기에 한번쯤 본서를 읽어보는 것도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해 한번 곱씹어 보면서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방향성을 가늠해보는 좋은 계기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