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는 지난 1993년에 초판이, 2011년 개정 증보판이 발행된 베스트셀러 시리즈로 이번에 다시 1권을 읽기로 결심하면서 마치 오래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듯한 설레임을 느낄 수 있었다. 20여년전 시리즈 1권을 읽으며 한번쯤 가보고 싶다고 느꼈던 땅끝마을에 아직도 방문하지 못한 현실에 아쉬움을 진하게 느꼈다. 영국에 거주하던 시절 우리나라의 땅끝마을에 해당하는 Land's End는 기를 쓰고 가 보았으면서 정작 우리나라 Land's End 방문은 차일 피일 미루고 있는 내 모습에서 내것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외국의 문화 감상에만 몰두하는 나 자신의 사대주의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를 다시 읽기 시작하며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 국토 곳곳의 보석같은 유물들을 만나러 떠나리라고 다짐해본다. 수덕사 대웅전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오래전 국사시간에 외운 고려시대 3대건물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의 이름이 떠오르며 주입식 교육의 강한 영향력을 실감하였다. 얼마전 부석사에 방문하여 무량수전을 넋을 놓고 한동안 바라보면서, 이 아름다운 건물을 반드시 외워야하는 지긋지긋한 이름으로 기억하며 수십년을 살아온것이 억울하고 우리나라 역사교육을 원망했던 기억이 있다. 비록 사진으로 보고 활자로 간접경험한 수덕사의 아름다움에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다시한번 쓴 입맛을 다셨다. 수덕사에도 꼭 방문하여 무량수전의 팔작지붕과는 다른 대웅전 맞배지붕의 아름다움을 실컷 느끼고 싶다. 경주 답사와 관련된 내용에 이르러서는 나 자신도 수학여행 방문시 그러했고, 아마 우리의 자식 세대들도 비슷하겠지만, 우리가 얼마나 경주를 천박하게 소비해 왔는지, 과연 우리가 경주라는 유산을 지니고 있을 자격은 있는지 슬픈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긴 요즘은 학생들 수학여행 마저 해외를 선호하여 평생 경주를 한번도 방문해보지 못한 젊은이들이 수두룩한 현실이니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여 경주에 대한 흥미와 자부심을 이끌어 낸다면, 자연스레 경주가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다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여행의 학생으로,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학부모 입장에서 경주를 방문할때도 모두 시내의 몇몇 답사지만을 다녔을 뿐이니 바닷가에 떨어져 있는 대왕암은 물론 감은사터에 있는 웅장한 탑을 감상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가서 별것도 아닌 성당건물에 환호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이나 중국 일본편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남한땅에 있는 저 수 많은 답사처들 가운데 앞으로 몇곳이나 가 볼 수 있을지 조바심마저 들었다. 감은사 터와 관련된 내용을 읽으며 한곳이라도 시간을 내어 방문하려는 나 자신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아름다운 사찰들이 수양의 필요에 의해서 또는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깊은 산골에 숨어 자리잡을 수 밖에 없는 사연은 안타깝지만 그덕에 이나마 보존되어 있는것이라는 생각또한 지울 수 없었다. 이제는 고속도로도 많이 개발되어 서울에서 2~3시간만 투자하면 방문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니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서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사상의 흐름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다녀 올 계획이다. 낙산사의 경우 화재로 인하여 대부분이 불타버렸지만 그로 인해서 과거의 무질서한 증축으로 인한 어지러움이 사라지고, 고증에 입각하여 사찰의 면모가 일신 되었으니 강릉의 큰 산불이 낙산사에게 재앙이었는지 축복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잘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온고이지신의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다시 살려내는 문화적 역량 또한 매우 중요하고 그에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문화재청장까지 역임하고 원숙하나 사회 원로가 된 작가의 젊은 시절 패기 넘치고 날이 서있는 필체를 읽는 것은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특히 문화재 관리 당국에 대한 비판은 훗날 본인이 최고책임자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채로 썻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