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하게 쓴 책을 읽었다. 역사 속 이야기를 중심으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쉽게 읽히면서도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책이다.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으로 돌아가 하루만에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쓸데없는 이야기 즉, 유사(遺事)의 '소용'으로 책은 시작된다. <삼국사기>에서 채택되지 못한 이야기 즉, 버려진 이야기가 일연을 통해 <삼국유사>란 책 속에 선택됨으로써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단군신화를 비롯한 소중한 이야기가 과연 소용 없는 것인지에 대해 되돌아보며 말이다.
역사는 삶의 이야기로, 과거의 사람들이 처했던 상황을 머릿속에 구현해보면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고민하고 되짚어보는, 그렇게 인생을 입체적으로 예견하고 준비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인문학이 역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저자는 역사를 "새날을 꿈꾸게 만드는 실체 있는 희망"이라고 이야기하는지 모른다.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이 이땅에 남긴 희망이 10년 뒤 동학농민운동의 씨앗이 되고,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에서 등장한 주장은 1차 갑오개혁에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우금치 전투에서 희생된 아무개들의 목숨이 과연 쓸데없는 것이었을까.
역사 속에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3연임을 할 수 있었음에도 자리에서 물러난 조지 워싱턴! 그가 남긴 말은 잔잔한 감동을 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준다. "정계를 떠나고자 하는 내 선택이 주의와 분별의 잣대에 비추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애국심의 잣대에 비추어서도 그릇되지 아니한 선택이라 믿는다." 사사오입이란 변칙을 도입하면서까지 집권을 정당화하고 연장하려고 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가 떠오르는 지점이기도 했다. 아울러, 첫 단추의 중요함, 그리고 마지막 뒷모습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다짐도 할 수 있었다.
당장 볕이 들지 않는 시기를 사는 사람에게도 역사는 용기를 준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나는 왜 일이 잘 풀리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은 역사 속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갔을까. 저자는 역사 속에서 다산 정약용이 겪었던 불운과 그가 살아갔던 삶의 방식에 대해 소개한다. 정조 말년, 주위의 질시로 유배를 떠났던 정약용은 조정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을 지켜준 존재가 사라진 상태에서 천주교인이었던 정조는 다시 유배를 떠나고. 18년 간의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는 다시 조정에 발을 들이지 못한 채 유배지에서 일생을 마친다. 출중한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중용되지 못했던 다산은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게 된다.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폐족끼리 무리를 짓지 말 것, 벼슬을 하지 못해도 벼슬하는 사람처럼 나라와 세상을 위해 살 것, 그리고 책을 읽을 것을 강조했다. 폐족으로 살아갔지만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고 끊임없는 저술활동을 폈던 다산은 당대의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기록을 남겨 후대로 전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약용이 200년 전 자신의 저치를 비관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역사를 안다는 것은 멀리 시대와 인생을 내다보는 시야를 갖춘다는 것 아닐까.
그 밖에도 이 책에는 역사 속 인물들이 남긴 일화가 소개된다. 비전의 중요성을 알고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던 선덕여왕, 관습에 얽매여 있다가 황금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잉카제국의 왕 아타우알파, 백성들의 삶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거란과 담판을 짓고 강동 6주를 손에 얻은 서희, 체면과 실속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장수왕, 대동법 하나를 위해 일생을 던진 김육, 일제강점기로 접어들자 판사의 자리를 박차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독립운동가 박상진, 편한 삶을 마다하고 막대한 재산까지 처분하며 독립운동을 이끈 이회영 등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삶에는 자신만의 궤적이 필요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저자 자신과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말이 이것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비교하기 바쁘고, 아웃사이더가 아닌 인사이더가 되기 위해 무던히 남의 눈치를 살피며 사는 우리에게 중심을 잡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색깔로 살아가는 역사 속 인물들을 우리는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