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휴가차 들른 속초에서 '빨강 머리 앤'을 만났다.
"앤커피스토리"라는 작은 커피숍으로 청초호의 멋진 뷰를 바라보며 앤을 만나고 추억할수 있는 카페였다.
액자 하나하나 소품 하나하나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6살 11살의 두딸들에게 엄마가 어릴때 보았던 만화영화라며 앤을 소개해주었다.
'주근깨 빼뻬마른 빨강 머리 앤 ~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빨강 머리 앤 하면 떠오르고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이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초록 지붕 집에 사는 빨강 머리 앤이 상상력이 풍부하고 예쁜 길이나 풍경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던 엉뚱한 고아소녀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것이다.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작은 시골 마을 에이번리에 사는 매슈와 마릴라 남매는 나이가 들어 힘이 부치자, 농장 일을 거들 남자아이를 입양하려 하지만 착오가 생겨 열한 살의 고아 소녀 앤 셜리를 맡아 키우게 된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자기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고 일손을 빌리려는 사람들 사이를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집다운 집에 살게 된 앤 셜리는, 원래의 이름보다 로맨틱한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상살할 거리만 눈에 띄면 몽상에 빠져들어 하던 일을 까먹기 일쑤인 못 말리는 실수투성이 아이였다. 본래 풍부한 상상력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앤을 둘러싼 고되고 외로운 일상이 가수성 넘치는 소녀를 더 상상 속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책장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골짜기에서 메아리치는 자기 목소리에 이름을 부텽 상상 속 친구를 만든 것도, 고아원 앞의 앙상하고 처량한 나무들이 자신의 처지 같아 마음 아파한 것도, 어찌 보면 모두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외로운 울림의 반영이었을 테니 말이다.
'빨강 머리 앤'의 배경으로 추정되는 1870년대와 1880년대는 소설의 무대인 프린승드워드 섬이 영국의 시민지에서 영국령 캐나다 자치연방으로 독립된 직후였다. 세계 곳곳에서 이민자들이 새로운 땅을 개척하겠다는 꿈을 안고 캐나다를 찾아왔고,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어 건물에는 전깃불이 들어왔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롱불을 밝히는 시골 마을의 작은 집에 살았고, 캐나다로 유입된 이민자들 대부분은 빈민 신세를 며치 못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차별받는 위치에 있던 이들이 바로 여성과 아이들이였다. 여성으 ㅣ지위가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아직 성인 여자에게 선거권이 없었던 것은 물론, 사회로 나아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여자아이들이 수학보다 살림과 바느질을 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시대였다.
이렇듯 여성이 정숙하고 순종적이기를 기대하는 시대에 소설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였다. 그리하여 이시대의 소설은 억압된 여성성을 일부 해방시킨 진취적이로 독립적인 여성상을 그리면서도, 온 가족이 둘러안장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건전한 내용과 산업화로 급변하는 시기에 변치 않는 도덕률과 일상의 감성을 담아내야 했다.
이런 점에서 '빨강 머리 앤'에 가장 도드라니 장점은 생기발랄한 주인공과 낭만적인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빨강 머리 앤'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사랑받는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변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잃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란는 시선을 잃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라나는 고아소녀의 성장기가 갖는 매력에 있을 것이다.
소설의 끝에서 앤은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원하는 목표를 향해 곧게 뻗은 길을 걸어 승승장구하지 않는다. 그렇게 뻗어 있을 것만 같던 길 위에서 원대한 포부를 잠시 접고 무엇이 아놀지 모를 길모퉁이로 접어든다, 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어쩌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꿈을 보류하는 아름다운 희생정신이었을 수도 있고, 가족 간의 사랑과 여성의 희생에서 소박한 행복을 찾는 시대적 압밥깅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앤이 보여준 가치는 현재에도 의미가 있다. 예기치 못한 그 길에 잔잔한 행복의 꽃이 피어나리라는 긍정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삶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기 떄문이다.
유난희 환하고 선명하게 반짝이는 별빛 아래 소담스레 피어나 흩날리는 새하얀 사과꽃들,장미빛 노을이 내려앉은 들판과 골자기, 그 위를 스쳐가는 향긋하고 상쾌한 바람. 앤과 함께 이곳 에이번리의 들판에 앉아 잠시 쉬어갈 수 있다면, 그래서 한 소녀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소통하며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는 이야기를 떠올릴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그보다 더 큰 휴식과 위로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