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서평]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작품은 유튜브 ‘보건교사 안은영 OST’ 클립에서 처음 접했다. ‘뾰로롱~’으로 시작하는 독특한 느낌의 OST 영상을 보고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혼자 타 지역에서 근무해 시간도 많은 내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답게 한국 지상파에서 자주 보기 힘든 독특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드라마 속 젤리의 색감은 화려했고 OST는 통통 튀었다. 주인공 안은영을 맡은 배우 정유미의 연기도 약간의 ‘똘끼’가 느껴졌다. 다만, 그런 독특함을 강조한 연출이다보니 시청자에게 약간은 불친절했고 드라마 속 세세한 설정들과 등장인물들의 감정선과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피스텔로 배송받은 책은 생각보다 얇았고, 표지는 역시나 파스텔톤으로 칼라풀했다. 책의 내용은 결론부터 말하면 드라마보다 재미있었다. 드라마에서는 영상화를 위해 거대한 악역과 이야기의 큰 줄기를 재창조했다면, 책은 얇은 두께에 어울리게 심플하고 깔끔했다. 드라마에서는 악역인 ‘안전한 행복’과 주인공 안은영의 갈등이 커다란 하나의 축이었다면 원작 소설에서의 악역은 너무 무겁지 않게 등장했다. 세계관 속 가장 쎈 악역과 싸우는 흔한 히어로물이 아녀서 더 흥미로웠다. 안은영은 꼭 우리 옆에 있을 것 같은 자잘한 나쁜 것들과 싸우고 있는 그런 히어로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고등학생인 래디의 가족이 나온 부분이다. 래디는 안은영에게 엄마가 귀신을 본다고 상담을 청해온다. 래디의 아버지는 유명 락스타이고 과거 연인의 죽음에 대한 노래를 발표해 큰 화제가 되었었다. 래디의 아버지에게는 전연인의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었고, 사람들은 락스타에게 현재 부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래디의 어머니는 그런 남편의 전연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고, 수면장애와 귀신을 본다는 환각에 빠져 지낸다. 이 에피소드의 독특한 점은 실제 귀신(동 작품 내에서는 젤리)이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안은영은 어떻게든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실제 부인이지만 전연인의 강렬함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던 래디의 어머니를 안은영은 수면 밖으로 꺼내준다. 래디의 가족은 당당하게 사람들 앞으로 나섰고 래디의 어머니 역시 더 이상 전연인의 망령을 보지 않았다. 안은영은 이처럼 사람들의 소소한 해결사 역할을 하며 우주의 평화가 아닌 나를 지켜주는 히어로 역할을 수행했다.
또 다른 주인공인 한문교사 홍인표의 역할도 흥미로웠다. 홍인표는 안은영의 말에 의하면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으로 안은영이 기운이 없을때 손을 잡아 기운을 채워주는 충전기 같은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다. 작가는 손을 잡는다는 충전 방식을 통해 둘 사이의 로맨스를 간지럽게 표현했다. 마치 20대 초반의 풋풋함처럼 그들은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며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이런 감정선이 두드려졌던 에피소드는 홍인표가 소개팅을 나갔던 편이었다. 꽃무늬를 싫어하는 홍인표가 꽃무늬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옷과 소지품을 가진 소개팅 상대와 얘기를 나누며 생각했던건 꽃무늬 옷을 입고 꽃무늬 가방을 들던 안은영이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둘의 감정이 깊어졌지만 서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히어로와 조력자 간의 로맨스는 아이언맨 등 다양한 작품에서 다뤄졌다. 그러나 보통 큰 사건으로 조력자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식의 관계 설정이 많았었다. 흔한 조력자와 히어로의 관계가 아니고 오히려 로맨스 소설에 가까운 관계가 자주 보여져 더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다.
올해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예년에 비해 책을 많이 봤다. 이 책은 그 중 손에 꼽을 정도로 흥미로워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내 옆에 안은영같은 재미있는 히어로가 있다면 삶이 한층 다채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뻔하고 지루하다 여겨질 때 알록달록한 색상의 젤리들이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를 방문하길 추천한다. 특히 맛있는 젤리를 먹으면서 보면 재미가 배가 될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