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 특색의 체제가 만들어진 격변의 시기>
현대 중국은 독특한 국가 체제를 가지고 있다.
절대 다수의 중국인들은 중국공산당이 국가 권력을 장악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권력을 넘보지 않는다.
대신 당과 국가는 인민들의 경제적 자유를 용인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양립하고, 경제와 정치가 분리된 것이다.
이러한 국가 체제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중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나라와 20세기 전반기의 중화민국에 그 실마리가 있다.
소수의 만주인이 세운 청나라가 권력 집단과 일반인을 엄격히 구분하여
다수의 한인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만들었던 정치 체제와,
공화국을 지향한 중화민국이 극심한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대중의 정치적 힘을 체감한 후 만들었던 정치 체제,
이 두 국가 체제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단점을 버리는 과정을 거치며 중국 특색의 국가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 중국 근대사는 현대 중국을 구성하는 통치 방식 및 정치 구조가 만들어진 중요한 시기다.
오늘날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국 근대사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다.
<주요 사건과 정치 구조의 변화에 주목하여 중국 근대사의 핵심을 담아내다>
비교적 많지 않은 분량의 이 책은 그러나 중국 근대사를
단순히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주요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와, 그에 따라 정치 구조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피며,
중국 근대사를 현대 중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보고자 했다.
4부 28장으로 구성된 책은 만주인이 청나라를 세우고 번영을 구가하는 시기를 1부에서 다룬 뒤,
1800년부터 1949년까지를 주요한 서술 대상으로 삼는다.
즉, 1800년대 이후 영국을 비롯한 여러 열강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충돌하여 변화하는 시기부터는
사건을 중심으로 더 자세히 서술했다. 각 부에서 다루는 중심 주제는 다음과 같다.
(1부 만주인의 청나라) 만주인이 청나라를 세우고 번영을 구가한 시기를 다룬다.
소수였던 만주인이 다수의 한인을 통치하기 위해 시행한
팔기, 만한병용, 예부와 이번원의 설치 등 청나라 특색의 통치 체제를 살펴본다.
(2부 왕조 체제의 균열) 청나라 왕조 체제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를 다룬다.
당시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청나라 중심 세계관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온 청영아편전쟁과
이후에 일어난 태평천국운동, 영프연합군의 침략, 신유정변,
정책 결정의 핵심으로 부상한 행정 기구인 총리아문의 등장 등을 살펴보며,
2000여 년 동안 이어져온 왕조 체제가 무너져간 과정을 그린다.
(3부 청말민초의 격랑)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설립된 시기를 다룬다.
왕조를 지키려 했던 청나라 조정이 사실상 완전히 무너진 계기가 된 의화단 사건과 신정 추진 등을 살펴보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세력들이 벌인 입헌운동, 혁명운동, 신해혁명이 어떻게 공화 체제의 기틀을 마련했는지 들여다본다.
또한 혁명의 성과를 가로채고 황제에 오르려 했던 위안스카이와
그에 맞서는 혁명 세력 간의 대립, 군벌들의 이권 다툼,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민 세력의 등장 등
당시 중국 사회에 일어난 정치적 혼란과 격변에 대해 알아본다.
(4부 국민당의 중국 통치) 중국국민당의 통치 시기와, 이후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중국공산당이 국가 권력을 손에 넣은 시기까지를 다룬다.
대중 정당으로서 발전을 모색했던 국민당이 공산당 흡수, 국민혁명, 북벌 등을 통해
어떻게 정치 체제의 토대를 마련했는지 살펴보고,
국민당보다 정치적 힘이 약했던 공산당이 농민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나간 과정과
이때 정립된 당과 농민, 노동자 단체 간의 관계가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 체제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알아본다.
<한국인 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중국 근대사>
국내에 출간된 중국사 관련 서적의 상당수는 외국 학자들, 주로 미국과 일본 학자들의 저술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역사가로서의 객관성을 아무리 견지하려 해도,
당시 자국의 상황과 관련지어 청나라와 중화민국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중국의 근대는 서양 열강의 동아시아 침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당시 열강의 일원으로서 동아시아에 나타난 서구나, 나중에 열강의 일원이 된 일본의 시각이 투영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외국 학자의 관점이 담긴 책들도 중국사를 이해하는 데 분명히 필요하지만,
외서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작금의 상황은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교육과 교수인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이 책을 집필했다.
청나라 이후 정치 구조가 변하는 과정과 그 역사적 의미를 깊이 있게 연구해온 저자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중국 근대사를 바라보아 그 고갱이를 끄집어내었다.
이처럼 이 책은 중국 근대사의 핵심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과 더불어,
중국 근대사를 더 균형 있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시작으로 한국인 학자의 시각을 담은 중국 근대사 책이 더 많이 출간되어,
국내에 중국 근대사에 대한 신선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