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스스로를 바쁜 인류라고 말한다.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모두들 바쁘게 살아간다.
바쁜 것을 부지런하다고, 노력한다고 말하고, 이런 것들을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善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런 것들이 온전한 善일수 있을 것인가를 반문하고, 善을 수호하기 위하여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반문할 필요는 없을까?
직장인으로서 30여년을 살아오는 동안 수시로 수면부족이었던 나를 깨우기 위한 방편으로 삼고자 이 책을 선택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몰랐던 사실들이 산처럼 쌓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잠자기 전에 몸에 쌓았던 피로를 덜어내는 단순함이 아니었던 것이다.
잠을 덜 자면 피곤함을 느끼게 될 뿐 아니라, 포만감을 조절하는 호르몬 분비가 억제되어 배고픔을 느끼게 되는데,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는 수면부족 상태는 무엇인가를 먹도록 하여 신체조건을 최적화시키려는 본능적 조절장치를 발동하게 한다는 뜻인데,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들은 차치하고, 수면의 긍정적 효과를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수면과학에서는 수면을 렘수면과 비렘수면으로 구분한다.
렘수면은 Rapid Eye Movement의 약어인데, 수면시간동안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교대로 일어나게 된다.
렘수면시간대에는 눈이 빠르게 움직이는데, 뇌활성이 깨어있을 때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수면중이어서 육신은 비활성화되었지만 정신은 활성화된 상태라는 것이다.
일정한 시간동안 렘수면이 진행되다가 비렘수면으로 옮겨가는데, 이 때에는 뇌가 비활성화되는 시기이다. 저자에 의하면 4단계를 거치면서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수면의 초기에는 비렘수면이 대세이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렘수면이 대세를 점유한다.
왜 수면시간동안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교대로 일어나는 것일까?
비렘수면의 핵심적 기능은 불필요한 신경연결을 솎아내고 제거하는 것이고, 렘수면은 신경연결을 강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두가지의 수면형태는 상호보완적 기능을 하기 때문에 어느 한부분이 부족하면 충분한 수면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필요한 수면시간을 못채우고, 늦게 자서 정상적으로 일어나거나, 정상적으로 잔 후에 일찍 일어나게 되면, 비렘수면이 부족하거나 혹은 렘수면이 부족한 상태를 만들기 때문에, 수면시간동안에 두뇌 속에서 혹은 정신세계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이 완료되지 않게 되고, 잠에서 깬 시간동안에 필요한 준비가 안된 상태에 있게 되므로, 정상적인 두뇌활동을 하기 부족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비렘수면은 불필요한 신경연결을 정리하므로, 각서시간동안 기억능력 등을 향상시키는 기능을 한다.
한편 렘수면은 신경연결을 활성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에, 각성기간에 있었던 감정적 불안정성을 해소하고, 직관적 요소들을 결합하며, 추상적 일반지식과 상위개념을 창안할 수도 있다.
이런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직장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요즘은 아침형인간이 대세인데, 새벽부터 조찬모임에, 스터디미팅 등등 이른 아침부터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게 된다.
이른 아침을 먹고, 활발한 사회활동의 댓가로 브런치를 먹고, 점심을 먹고, 열심히 일하고 야근도 한다.
그리고 비지니스미팅이라는 명목으로 저녁모임을 하면 반주도 곁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하룻동안 치열한 사회활동을 하고 귀가하면 늦은 밤이 되기 일쑤이다.
저자는 하루에 8시간 정도의 수면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니, 그의 말대로 추론해 보자.
귀가후에 간단하게 씻고 잠자리에 들면 12시가 되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조찬회를 참석하려면 5시나 6시에 일어나 부리나케 준비해서 출근한다. 가는 내내 지하철을 탄다면 졸겠고, 자가운전을 하면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부릅뜨고 갈테고, 사회 고위층이라면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졸면서 갈 수 있겠지만, 눈 뜨자마자 졸리운 상황을 피할 길은 없다.
이런 부지런함이 바람직한가? 저자에 의하면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차라리 새벽 조찬모임 포기하고, 남보다 일찍 출근하는 일을 포기해야 전날의 머리속 혼란을 정리하고, 인간다운 추상적 능력을 발휘할 준비가 되니, 부지런한 직장인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버려야만 건강한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근면한 인간이기를 요구하는 현대의 생활상은 긍정이 아니고 부정해야 할 일이다. 심하게 말하면 인간적 생활을 착취하는 것이다.
저자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연구에 찬사를 보낸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