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책의 제목을 봤을 때, 여행을 통해 느낀 점과 여행의 가치에 대해 마땅한 주장을 펼치는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내 생각과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일단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건 맞다. 여행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음, 뭐라고 해야할까… 내가 생각한 '여행'과 많이 다르다?
여행은 일반적으로 '내가 사는 곳을 떠나 객지나 외국에 가는 것'이다. 돈을 들여 타지에 가서 먹고 즐기고 느끼고 오는 것 . 딱 그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좀 더 넓은 개념의 여행을 이야기 한다. 내가 사는 인생, 비여행 등에 빗대어서 여러가지 관점에서 여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몇 가지 이야기가있었다.
TV 프로그램에서 방영되는 여행 다큐멘터리를 감상했다면, 그것은 여행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직접 보고 들은 것만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출연자가 여행 국가에서 각각 지역별로 다니는 것인데, 나중에 다같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각자 여행한 곳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많이 유명한 프로그램인건 알았는데, 나는 안봤다. 근데 이 책을 읽으니 한번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중에 TV에 방영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다른 여행지를 다니는 사람들을 제3자의 시선으로 보면서 낯설고 신기하게 느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 나라를 여행했다고 해서 그 안에 있는 도시를 모두 탐방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명소라 할만한 장소를 몇 군데 둘러보고 서둘러 다음 장소로 출발하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서 저자는 사실상 이 여행을 가장 총체적으로 체험하는 이는 바로 자기 집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시청자들이라고 한다.
다들 한번쯤 국내든 국외든 여행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럼 자기가 다녀온 장소를 모두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어땠는지 읊을 수 있을까? 난 그럴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거의 기억도 안나고 그나마 당시 여행했던 사진을 봐야 '아, 그래 이런 게 있었지' 하고 겨우 기억해 낼 것이다. 이처럼 일인칭으로 수행한 '진짜' 여행은 시간과 비용 문제로 인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여행을 하고 난 후, 시간이 지나 TV나 여행서에서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고 하자. 그들을 바라보는 일인칭이 아닌 제3자의 관점은 새로운 경험과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직접 여행할 때는 몰랐던 그들의 느낌과 경험들이 우리의 경험과 합쳐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된다고 한다.
나는 지금껏 여행이라 하면 보통 직접 보고 들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니, 애초에 간접 체험이 여행인지 아닌지 생각해볼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와 같은 '탈여행'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직접' 가는 것에만 의미를 둬서 여행의 본질을 조금 흐리지는 않았나…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을 목격한 아폴로 8호의 승무원 세 명은 뉴욕타임스에서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으로 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저때는 참 신박한 말이었다. 지구가 작은 구슬처럼 보인다는 것에 자존심을 다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사는 우리 모두 서로를 같은 행성에 탑승한 승객이자 동료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여행같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가지 일을 하고, 결국은 떠난다. 그러면서 작가는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뭘까. 다들 가지각색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여행을 많이 가본 것도 아니어서, 그럼 더 더 많이 가면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늘 아리송하다.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이런 목표는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고 한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는 것이 그러하다.
백퍼센트 자기가 계획한 일정대로 여행을 완벽하게 끝마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늘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한다. 그 일로 우리의 잠든 내면 의식을 일깨우기도 한다. 설령 여행할 당시는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때 우리가 깨달은 것들이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래서 인생과 여행은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어도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생이든 여행이든 우리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낙심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얼마든지 다른 목표가 생겨 거기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고, 설령 다시 실패한다고 해도 우리는 또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여행을 통해 뭔가 소중한 것을 얻어 돌아와야 한다는 관념은 세상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나도 그런 고정관념이 늘 여행에 대해 아리송하게 만드는, 일종의 '틀'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간지 엄청 오래 되었는데, 만약 종식 된다면 아주 멀리, 오랫동안 다녀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