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병리적인 부분은 물론 우리 일상을 바꾸고 있다.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와 같이 이전의 상황에서는 낯선 것들이 이제는 일상의 것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심지어 석학들은 이제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종식되더라도 그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 갈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런 점을 본다면 전염병에 의한 영향력이 인간의 신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에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안토니누스역병'부터 '소아마비'에 이르기까지 13가지의 전염병이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루는 이 책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안토니누스역병: 서기 165년~166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안토니누스역병은 최초 증상(물집)이 발현된 후 약 2주간 혀와 목구멍이 발진으로 뒤덮이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는 병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두창(痘瘡 : 천연두)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안토니누스역병은 로마의 멸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주제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게르만족에 의하여 로마가 멸망하였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것이고 또한 게르만족이 로마에 비하여 앞선 문명을 지닌 것이 아니었기에 오늘날 로마의 멸망 원인은 내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사치와 향락에 빠졌으면서 자영농의 몰락에 따라 로마군의 근간이 무너진 것들을 들 수 있으며, 최근에는 로마의 식수를 공급하는 파이프에서 발생한 납에 의한 중독까지 거론되고 있다.
가래톳페스트 : 14세기 서유럽에 맹위를 떨친 가래톳페스트는 흔히 흑사병으로도 알려져 있다. 역시 이 병의 정확한 발병원인과 치료법은 전무한 상황에서 다양한 요법들이 등장하였다. 가령 좋은 와인을 조금 마시기, 시궁창 안에 살기, 에메랄드 부숴 먹기, 병든 사람 쳐다보지 않기, 오줌/고름 마시기가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러한 요법들의 대부분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점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가래톳페스트는 쥐를 숙주로 하는 벼룩에 의한 박테리아가 원인이었다. 이러한 벼룩이 인간을 물어서 상처를 내면 그 상처에 박테리아가 옮아가면서 가래톳페스트를 유발하는 것이었으니 그 당시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청결한 환경을 유지하고, 쥐와 벼룩을 퇴치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외에도 다른 전염병에 대한 내용들 역시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다. 에필로그에서 에이즈에 대한 짧막한 저자의 언급은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꼭 와닿는 내용이다.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에이즈는 당시 미국 대통령에 의하여 무시되면서 초기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알려진 것처럼 에이즈는 인간에게 공포스러운 전염병으로 인식되면서 온갖 괴담을 만들어내며 우리의 삶을 잠식했다. 에이즈에 대한 최초 보고를 무시하지 않고, 그 원인과 심각성을 공개했더라면 아마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전염병에 대한 처리는 긴급하면서도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 또는 집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 사태는 물론 오늘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는가?
마치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여름이 되면 뜸해질 것이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것은 수백년 전 콜레라가 창궐한 영국의 한 언론매체의 기사 내용이다. 콜레라가 물에 의하여 전염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러한 기사는 말도 안되는 것임을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콜레라가 어떻게 전염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이러한 추측성 기사가 등장할 수 있었다. 아직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여름이 되면 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은 수백년 전의 영국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한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무수히 많은 전염병이 등장하였지만, 인류는 그것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과거 전염병에 대한 역사적인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있고 유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