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을 보면서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십자군 원정대에 의해 세워졌으며 이슬람에 의해
지배되던 곳을 레콩키스타라는 재정복운동을 통하여 기독교도 국가로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또 하나 영화에서나
가끔 보았던 아라곤이라는 국가가 역사적으로 스페인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중해라는 갇힌 바다에 기대어 발전한 유럽문명권의 변방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열린 바다로 나가
문명의 페러다임을 전환시키면서 역사적 대성공과 함께 전환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아울러,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는 저자의 말에서 보듯이 포르투갈과 스페인 제국이 무너지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서양의 입장에서 볼때, 포르투갈과 스페인 제국의 흥망성쇠, 동남아 무역로 개척 이야기 등이 흥미진진할 수 있지만,
동양의 입장에 볼때, 보다 우수한 문명을 지니고 있던 동양이 어떻게 정복을 당하고 식민지가 되었는지를 되집어 봐야 할 것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을 축출하는 재정복 운동인 레콩키스타에 대한 역사적 상황을 확인하였고, 그라나다의
내분과 분열에 따른 약화된 국력과 이사벨여왕의 집요한 재정복운동 추진에 의해 결국 그라나다 함락되면서, 800년 가까이 머물렀던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최후의 보루가 무너져 버렸다는 것, 그라나다 왕국 멸망의 일등공신으로 위대했던 문명의 마지막을 엉망으로
장식한 보압딜,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한 번 실감하게 하였고,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이사벨 여왕으로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대양을 향한 야망을 놓지 않았던 이사벨여왕과 세계일주를 최초로 완성하게 한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등 위대했던 역사적
인물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였다
역사 수업과 역사 책에서 두루뭉실하게 알려줬던 대항해시대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가 촘촘하면서도 흥미롭게 쓰여진 책으로,
마젤란은 스페인이 아닌 포르투갈 사람 페르낭드 마갈량이스 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포르투갈의 인도 신항로 개척에도 다수 참가했던 사실, 오늘날 몰루카 제도로 불리는 곳이 16세기에는 얼마나 높은 가치를 지녔던 '향료 제도'였는지, 포르투갈 탐험가 페드루 알바로스 카브랄이 인도 신항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브라질을 우연히 발견한 것, 인도 신항로가 개척되기 전까지 이미 중동에서 인도와 동남아로 이어지는 광대한 향신료 무역망을 무슬림 상인들이 촘촘히 장악하고 있었던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불과 100여년만에 재정 파탄과 몰락을 걷게 된 경과다. 저자는 최고 지도자와 함께 했던 종교적 맹신, 이로 인한 비관용의 문화가 두 나라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한다. 드넓은 제국을 통솔하려면 로마 제국과 같은 관용과 포섭의 문화가 필요했는데, 두 나라를 휩쓴 기독교 순혈주의는 관용의 문화 뿐 아니라 국가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무슬림과 유대인도 모두 배척해버렸다. 그 결과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었던 두 나라가 아닌 네덜란드와 영국이 해상 제국으로 부상하며 대항해시대의 과실을 독식하게 됐다.
향료 제도는 인도네시아 동부 술라웨시 섬과 뉴기 섬 사이에 있는 말라카 제도를 일컬으며, 향료는 당시에 인도나 말라카 제도 등에서만 생산되었던 것으로 아주 귀한 것이었고 , 향료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중세 유럽 국가들은 향료를 찾아 사방으로 나서게 되었고, 15세기 후반 유럽 국가들의 대항해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다만, 당시에도 유럽과 아시아는 교역하고 있었지만 거의 모든 교역을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들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귀한 향료를 사기 위해 전 유럽 무역상들은 베네치아로 몰려들었다. 베네치아가 무역을 통해 큰 이윤을 남기자 다른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경로로 인도에 갈 수 있는 바닷길 개척에 나섰다. 특히 탐험정신이 강했던 포르투갈의 왕자 엔히크는 선박을 제작해 탐험 항해가들을 아시아로 파견했고
마침내 바르톨로뮤 디아스 함대가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포르투갈 함대는 희망봉을 돌아 항해를 계속했고 인도양을 거쳐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하게 된다. 포르투갈은 총과 군대로 무장해 캘리컷 지역을 정복해 후추 무역을 독점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포르투갈은 여러 대륙을 돌며 아프리카와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까지 식민지화해 포르투갈 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에 해상무역의 선수를 빼앗긴 스페인은 더 짧고 빠른 무역항로를 찾는 데 혈안이 됐다. 이때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가인 콜럼버스는 인도의 동쪽 가장자리로 가는 짧은 항로를 개척하고자 스페인 국앙 페르난도 5세와 여왕 이사벨에게 인도와의 후추 교역을 약속하며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총 4차례나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항해했다.
16세기 포르투갈 인도 총독은 말라카 제도의 일부 섬을 점령해 동인도 향료 무역을 장악하기에 이르렀고, 향료제도를 손에 넣으며 막대한 부와 식민지를 가진 나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7세기에는 뒤늦게 해상 무역에 뛰어든 네덜란드가 함대와 수백 명의 군인을 앞세워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향료제도를 완전히 식민지화 했고, 이후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향료 무역의 주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중세 말엽부터 근세까지 향료 무역은 세계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대항해시대와 항료 제도를 향한 야욕이 맞붙으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수많은 침략과 식민 지배를 겪어야 했다. 향료를 손에 넣기 위해 혈안이 됐던 유럽 국가들이 많은 신대륙을 찾아냈고, 세계의 문화적, 상업적 교류가 빨리 이뤄질 수 있었던 것도 항료 제도라는 노다지를 목표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