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가 돌고 돌아 마침내 서울로 들어왔다.
첫째 권 '남도답사 일번지'가 세상에 나온 지 25년 만이다.
'답사기' 새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오랜 독자들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정년(停年)이라는 것을 잊고 답사기에서 손을 놓지 못하여 마침내 한양 입성까지 하게 되었다.
실제로 '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항시 옛 친구 같은 독자들과 함께 가고 있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내가 삶의 충고로 받아들이는 격언의 하나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인의 진득한 마음자세이다.
어쩌면 그렇게 독자들과 함께 가고자 했기 때문에 '답사기'가 장수하면서 이렇게 멀리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 그렇게 갈 것이다.
- 「책머리에」에서
책은 나오자마자 바로 사두었으나 아껴 읽을라고 고이 모셔다 두었다가 이제 읽었습니다.
서울편 1권의 제목은 <만천명월 주인옹 萬川明月 主人翁>이다.
창덕궁 후원의 정자인 존덕정에 있는 정조가 쓴 문장인데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냇물은 백성을 뜻하고 달은 자신을 뜻하는데 백성의 얼굴에 비치는 군주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는 통치자의 마음을 담고 있다.
이번 아홉번째 책에서는 역사 도시로서 서울은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는 유래가 없는 궁궐이 다섯개나 있어
"궁궐의 도시"라고 특징을 지으면서 그 다섯 궁궐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 중 창덕궁과
창경궁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한편 일반인들이 그리 주목하지 않았던 "종묘"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종묘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고 창덕궁은 중학교때인가 비원으로 소풍 간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창경궁은 창경원 시절 동물원에 가본 까마득한 기억밖에 없으니 그 궁궐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말 부끄럽게도 문외한이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감동받은 바가 많아 방문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비록 책 속에 사진들이 몇장씩
있어도 전체적인 감이 잘 오지 않았지만 Daum에 지도를 보면서 street view를 보면 궁궐 안까지 자세히 street view가
있어 책을 읽으면서 지도를 보고 또 street view를 보다보니 물론 현장에 직접 가서 보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3차원으로 된 street view를 보다보니 궁궐의 배치 및 정경이 눈에 선하게 잡힌다.
유홍준 교수님의 가이드대로 그 view를 보면서 따라가다보면 마치 약식 가상 현실의 축소판을 경험하게도 되는
느낌인데 아마 앞으로는 실제와 같은 궁궐 체험 가상 현실 프로그램도 충분히 나올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궁궐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더불어 얽히고 얽힌 수많은 궁중비사 그리고 궁궐에 걸려 있는 많은 글들을
작가 특유의 유려한 글솜씨로 풀어 나가고 있어 읽는 동안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빨리 이 9권을 끝내고
같이 산 제 10권도 마져 보고 봄이 되면 가서 직접 가서 확인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들뜨게 한다.
첫째권이 나온 이후 벌써 350만부 이상 팔렸다니 정말 우리 시대를 넘어서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처음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유행시켰던 그 유명한 말 "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라는 말처럼 그동안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우리의 문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사랑이 그만큼 더 커졌으니 실로 유홍준교수의 공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조 궁궐들의 특징을 보면 중국 궁궐의 웅장한 규모와는 다르고 또 일본의 인위적인 조형미와는
다른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 건축의 특징을 이야기 하면서 언급했다는 " 화이불치 검이불누 ( 華而不侈 儉而不陋)"
라고 한다. 즉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는 뜻인데 어떻게 보면 건축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좋은 귀절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많은 것이 깃들여져 있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