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에 가려진 은둔 로스쿨 학생, 박재훈이 쓴 로스쿨 이야기
산업은행에 막 들어오고 얼마 안되었을 때 KAIST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었었다.
동생이 당시 KAIST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기도 해서 부모님이 더 관심있게 보시곤 했었다.
돌이켜 보면 다양한 신선한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생경한 직업군과 엘리트 집단의 생활,
그 자체에 매력을 많이 느꼈던 거 같다.
너의 로스쿨은 지난날 KAIST를 보며 젊은 엘리트들의 초상을 들여다 보던 심정과 똑같이
로스쿨에 다니는 미래 법조인 엘리트들의 생활을 들여다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읽기 시작했다.
마침 큰 딸이 로스쿨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어, 과연 로스쿨의 힘든 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다양한 학과외 활동 들이 존재할까 하는 호기심으로 끝까지 쭉 읽어냈다.
내가 먼저 읽고 딸이 읽기로 하고 이 책을 주문하였다.
로스쿨의 학기별 분위기, 진로활동, 학업활동과 다양한 캐릭터별 생활방식을 '지방'소재 로스쿨이라는
환경에서 풀어내 우월감과 열등감이 교차하는 캐릭터들간의 갈등과 조화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번 볼 이유는 없어도 한번 쯤은 봐두면, 로스쿨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는 적어도 로스쿨에서 벌어질
낯선 이벤트들에 당황하지는 않겠다 싶다.
책 속의 화자는 지방대 출신 고학생인데, 어렵사리 힘들게 로스쿨을 다니고 있는 실력도 배경도 별로 없는
'불쌍한' 캐릭터이다. 이 화자를 중심으로 서울 명문대에서 밀려 여기까지 내려온 로스쿨 지원자들, 대학과 다름없이
로스쿨 반수를 꿈꾸고 실제로 달성하기도 하는 지원자들, 늘 이런 프레임에 자주 등장하는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은', 그러나 '차갑고 도도한' 여학생, 담배와 축구에 열심이나 계속 변호사시험에 떨어지고 있는
'성격만 좋은' 나이 많은 아저씨 그룹들, 그리고 당초 취지와 달리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올리기 위해
운영되는 대학원과 그 교수진과 학생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 들이 그려지고 있다.
마침 '로스쿨'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끝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읽었는데,
서문에서 저자가 꺼낸 '만약 로스쿨이라는 드라마가 제작된다면.." 가정에 기반한 스토리라인이
실제 드라마의 스토리라인과 일치해서 깜짝 놀랐었다.
현실에 있을 법하면서 가장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흔치 않은' 캐릭터들을 배치시킨
어찌보면 '이상적'인 로스쿨의 모습을 그릴 거라는 생각에서 저자와 드라마 작가의 마음이 일치했나 보다.
가난하고 실력도 없지만 정의로운 '여'학생이 주인공, 정의롭고 능력있지만 '여러가지 애환이 담긴 스토리가 많은' 남학생,
정의롭고 유능한 교수, 약삭 빠르고 눈치 빠른 학생, 박쥐 같은 학생, 나이 많은 학생들로 구성될 것이라는
저자의 예상 플롯은 역시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저 재미난 구성이라면 이상적 구성이라면
이럴 것이라는 '로스쿨 예비생'들이 입학 전 가졌던 상상과 실제 현실을 적당히 버무린 이야기일 뿐.
2학년이 지나면 얘기가 특별할 것도 없이 학생들의 시험준비 분위기를 그려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조금 진부하게 마지막 학년과 시험때 모습을 그려나갈 즈음, 그동안 숨겨졌던 모든 캐릭터들의
스토리를 밝혀내며 이 책은 마무리를 짓는다.
평범하고 너무 훌륭하지도 너무 약지도 않은 모습의 주인공이 당연히 주인공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마지막에 저자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늘 은둔에 숨어살며 갖은 루머의 주인공이었던 (다시말해 뒷담화의 주인공이었던)
박지훈이 사실은 '박재훈'이었으며, 오랜 시간 화자가 그의 근방에 머물면서도 모든 루머에 모른 척 하고
막판에서야 친한 척 티를 내는 장면에서 '박재훈'은 내 이름은 박지훈이 아니라 '박재훈'이며,
네가 그동안 어떻게 사실 나를 대했는지 그 모든 것을 나는 다 알고 있다고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박재훈'은 저자의 이름이 아닌가... 퍽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저자는 사실 누군가를 그리면 화자의 관점에서
로스쿨을 기술했으며 사실 그 화자에 대해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글 말미에서 그 화자의 저열함을
1인칭적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3인칭적 관점에서 간결하게 지적하면 밝혀내고야 만다.
로스쿨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해자이며,
그것이 로스쿨의 삶의 방식임을 저자는 밝히며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딸이 로스쿨에 진학할지, 진학하여 어느 방향으로 진로를 잡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혹시라도 진학하게 된다면, 다닐만한 환경인지, 어떻게 진로모색이 이루어지는지 살펴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물론, 아직 우리 딸은 아직 1장도 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