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스포츠에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그나마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온 국민이 관심 있어하는 국제 스포츠 경기는 챙겨보는 편이었지만 이번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한 여러 국가들의 반대 속에서 오직 주최국의 강력한 의지로 열리는 것이었기에 오히려 반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나니 나에게도 결국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인지 열띤 응원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 도쿄는 한국과 시차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일과 중에도 언제든지 국가대표들을 응원할 수 있어 감정이입의 정도가 더 강해졌다. 특히 양궁, 수영, 펜싱 등 누가 봐도 치열하게 준비해서 좋은 기량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는 종목과 선수들에 대해서는 그만큼 애정의 깊이도 깊어졌다. 여자 배구도 그렇게 애정을 갖게 된 종목 중 하나였다. 비록 메달권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그 어떤 국가보다 열세인 상황에서 오직 정신력과 팀워크만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9년 만에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낸 여자 배구팀은 가히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그 영웅들의 캡틴은 바로 등 번호 10번의 김연경 선수였다.
이 책은 순전히 김연경 선수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선택한 책이다. (심지어 목록에 있지도 않은 책을 굳이 신청해서 수령했다.) 올림픽 시작 전부터 여러 가지 잡음이 많았던, 쌍둥이 자매가 없으면 8강 진출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던 여자 배구팀을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채찍질하며 4강까지 올려 놓은 것은 바로 캡틴 김연경이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그녀에게는 어떤 특별한 역량이 있길래 본인 자신의 기량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팀원들의 기량도 함께 높일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아주 특출 난 재능을 타고났던 것이겠거니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은 초반부터 나의 예상을 완벽하게 깨뜨렸다. 배구선수 김연경의 어린 시절은 내가 기대한 만큼 그렇게 화려하다거나 특출 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함을 지나쳐 또래 선수들에 비해 부족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리 친언니가 배구하는 모습을 보고 강한 이끌림을 느껴 시작한 배구라고는 하나, 자라지 않는 키와 주어지지 않는 롤, 이 2가지 악조건 만으로도 배구를 그만 둘 여지는 충분해 보이건만 며칠 동안 엄마를 졸라 힘들게 시작했던 배구였기 때문인지 그녀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빛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오는 기간이 고작 1-2년이 아니라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지는 수 년의 시간이었음에도 그녀는 오직 배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배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그 침잠의 시간들을 이겨내었던 것이다.
더욱 존경스러웠던 것은 그녀가 어둠의 시간들을 이겨내는 방식이었다. 또래보다 키가 작아서 백날 후보 선수로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배구 연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본인이 적재적소에 쓰일 순간을 기대하며 묵묵히 연습할 뿐이었다. 흔히 누구든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를 맞이한다고 말한다. 김연경 선수는 그 기회를 꿈꾸며 자신의 눈 앞에 기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던 것이다. 기본기를 열심히 다졌던 그녀는 결국 고등학교 때부터 급격한 신장 변화를 겪으면서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공격수가 되었고, 본인의 주 포지션인 레프트뿐 아니라 수비에도 능한 전세계에서 전무후무한 배구 황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김연경 선수는 전혀 타고나지 않은 노력형 인간일 뿐인걸까. 이에 대한 김연경 선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김연경 선수는 스스로가 다음의 세 가지 재능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첫째, 엄격한 자기 기준을 오랫동안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 세계 최고의 배구 황제가 된 지금까지도 그녀는 자신에게 엄격하다. 심지어 도쿄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기초 체력 훈련을 등한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것이 자신만의 기준이자 약속이기 때문이다. 둘째,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간단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셋째,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꾸는 것. 만년 후보선수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그녀는 자신에게 기회가 올 것을 꿈 꾸며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나는 비록 스포츠인이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우리 인생은 모두 똑같다. 각자 서 있는 자리가 다를 뿐이다. 고로 나는 김연경이라는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며 내 삶을 반성한다. 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주변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며 살았는가. 아주 작은 목표 하나가 이루어진 후에는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꿈 꾸지 않는 재미 없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오늘부터라도 나는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겠다. 끝날 때까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관 뚜껑이 닫히는 그 날, 나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도록 매 순간을 열정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배구황제 김연경은 내 인생의 롤 모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