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일본 간사이 지역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보고싶던 교토의 정원에 앉아 느낄 여유 등을 생각하며 설레였다. 여행의 가장 중요한 핵심지는 교토와 오사카였다. 물론 그 일정중 나라와 고베 등도 있었지만,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여정중 잠시 시간을 내어 들러가는 중간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시간이 부족하면 그냥 지나칠 생각도 하고 있던 나였지만, 나라역에서 내려 뛰어노는 사슴들과 마주하면서부터 동대사, 흥복사를 구경하며 나라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스카, 나라에 대해 다루면서, 나라를 거닐며 느꼈던 그때의 추억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전, 그당시 찍었던 사진 파일을 열어보기로 했다. 그때 나의 모습은 지금과 비교하면 뭔가 어리고 생경했지만, 나라의 풍경과 여러 문화유산 등은 책에 기술되고 보여진 그대로였다. 특히 책에 게재된 사진 등과 내가 찍은 사진들을 비교하면서 느끼는 희열 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별한 느낌이었다. 실제 사슴들이 이리저리 도로를 뛰어다니고 먹이를 찾아 난폭하게 행동하지만, 사진상에 사슴들은 평화롭게 늘어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라 웃음이 나왔다. 사슴 먹이를 사서 줘보기도 하고, 혼자 있는 어린 사슴 곁에 다가가 같이 한 컷 찍어보기도 하며, 나라의 중심부를 향해 걸어갔었다. 답사기를 통해 보니 대규모 부지의 나라 공원은 과거 후지와라씨가 자신들을 위해 만든 불사인 흥복사 경내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되었다.
무엇보다, 나라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은 '동대사'이다. 일본 화엄종의 대본산으로, 세계 최대의 목조건축물인 다이부쓰덴과 그 안에 일본의 가장 거대한 청동불상으로 유명하다. 나도 이 청동불상을 직접 보고싶어 나라에 왔었었다. 화엄종의 본산이란 의미로 동대사 남대문에 보면 '대화엄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는 본문을 보고, 사진을 찾아보니 역시 그 앞에 서있는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었다. 2단의 거대한 목조건축물을 보고 특이하다며 놀라서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진을 넘기다보니 나무 기둥밑 구멍에 누군가 머리를 집어넣고 엉덩이를 치켜든 사진이 나왔다. 이걸 보니 그때 아이들이 그 구멍을 줄서서 통과하던 기억이 났다. 답사기에서는 이 속을 들어갔다 나오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기어들어가는 놀이를 한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내 기억으로는 구멍을 통과하면 나쁜 재액들이 없어진다고 했던 것 같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더 궁금한 건 그 당시 내가 그 구멍을 통과했었는 지 아님 그냥 지켜만 봤었는 지인데, 지금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동대사에게 우리가 가장 주목하고 기억해야 할 점은 동대사 건축과 청동불상 제작에 우리 한국인 선조들의 역량과 공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동대사 건축은 신라 출신 목수가 총감독, 거대한 청동불상은 백제계가 담당했다고 알려져있다. 답사기에 이에 대해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데, 당시 일본에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기술자나 집단이 없었기 때문에, 주조, 도금, 금속세공, 토목 등의 뛰어난 기술은 백제가 멸망하면서 이주해간 도래인이나 그 자손들의 비중이 매우 컸다고 한다. 일본에선 나라의 사찰과 불상을 이야기하며 도래인 기술자들의 공로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지만, 일본인들의 문화적 열등감과 숨기는 속성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만,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기억했으면 좋겠으며, 우리 선조의 뛰어난 역량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도 함께 가졌으면 한다.
저자는 단순히 청동불상만 보고 돌아가면 동대사를 제대로 보고 이해한 것이 아니라며, 대불전 너머 이월당, 삼월당 등의 관람도 권했다. 그래서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다행히도 다녀왔길래 조금 안심했다. 답사기내 '이월당에서 바라본 동대사'라는 사진이 게재되어 있는데, 그와 유사한 장소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 찍은 사진이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세의 흐름까지 내 사진과 동일하니 짦은 탄성이 뱉어졌다.
이번 답사기를 읽으며, 나의 오랜 추억을 하나 다시 꺼내본 듯 해서, 읽은 내내 즐겁고 아련했다. 그 당시는 아쉽게도 혼자만의 여행이었으나, 다음에는 가족들과 나의 추억을 함께 공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