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잘 알려진 명언은 사회생활을 할수록 살아가는데 많은 가르침을 준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는 되물음을 하지만 막상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며, 알고 있고 행동의 지표가 되던 지식이 처음부터 날조된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이 사실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자세 만으로도 새로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보다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람은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에 근거하여 행동을 한다.
그리고 알고 있는 사항에 대한 변화를 거부한다.
나 자신을 부정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위상을 지키려는 본능적인 반응이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 할 때 세 직업인의 사고방식으로 빠져든다고 한다.
이는 의사결정이나 상황판단에 아전인수의 논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자기가 성스럽게 여기는 믿음이 위험해지면 자기의 이상을 보호하고 드높이기 위해 전도사가 되어 설교를 한다.
다른 사람의 논리에서 오류를 발견하면 검사가 되어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논거를 나열한다.
다른 사람의 동의를 구해야 할 때는 재빠르게 정치인으로 변신해서 지지받기 위한 연설, 언론플레이, 로비 등 정치 공작을 한다.
이 과정은 결국 잘못된 판단을 하는 순간, 한번 더 생각하고 객관적인 관찰자의 눈을 가져야하나 자기 자신과 주변 모든 것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 설득 과정을 지나게 된다는 아이러니를 꼬집는다.
다단계 금융사기에 버진 그린스펀의 예를 들어 명확하게 설명해주는데, 심지어 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남에게 잘 속는 이유를 주제로 한 책의 탈고를 마치는 시점에 사기를 당한다. - 전문가가 당하는 사기에 일반인들은 속수무책일 수 밖에.
이런 실패를 회피하기 위해 과학자의 고글을 써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
과학자는 자기가 아는 것을 의심하고, 모르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며, 새로운 데이터를 확보할 때 마다 그것을 근거로 자기의 기존 견해를 업데이트하기 때문이다.
창업가 프로그램에서 기업 전략을 만들고, 고객과 면담하고, 최소실행가능한 시제품을 만드는 방법 속에 과학적 사고를 한 집단이 향후 자신의 기업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탁월하게 우수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실험을 제시한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사실이 왜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과거의 지식을 업데이트할 기회를 얻게 되고, 외부의 정보가 입력될 수 있는 창이 크게 열린다. 기존의 지식과 새로운 지식이 융화되며 새로운 방향성을 가질 수도 있다.
셰계 토론 대회에서 두 명의 토론자가 유치원 국고 지원금에 대한 찬반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제목만 들어서 알겠지만 많은 이들은 당연히 지원해주는 게 맞다 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토론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토론은 찬성 토론자 우위로 게임을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 된다. 반대 토론자인 하리시라는 친구는 샅바를 자기 쪽으로 당기려고 힘을 쓸 뿐 아니라 상대방 쪽으로 힘을 넘겨주는 방식도 활용하여 반대편에 있는 청중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애덤 그랜트는 이 토론을 지켜보며 시작부터 자신의 상식에 갇혀 우리 편을 미리 지정하였다는 사실에 스스로 실망함과 동시에 상대방에게 반대논리만 주장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공조하며 토론의 관점을 과학자의 눈으로 바꾸어 가는 하리시의 토론방식에 감탄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다시 생각하기 위해 상대방의 의견을 공감하고 거기에서 나의 논리를 찾는 방식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항상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상대방의 주장에서 내가 동감할 항목을 찾아내고 이를 다시 생각하기를 통해 나의 주장과 연관시키는 방식은 토론에서 더욱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결론을 찾아내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저자의 사촌동생이 라이언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적부터 조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선택을 의시가 되는 것으로 목표를 삼았다. 중간 중간 자신이 진짜 원하는 직업이 의사가 되는게 맞을까 고민했지만 그 때 마다 그는 그래 이 길로 가면 행복해질거야라는 자기 채찍질로 원하는 성과를 얻게 된다.
하지만 옴짝달싹 못하는 일에서 과연 자신의 선택이 옳았을까 생각해본다.
조금 더 변곡점에서 자신의 미래를 다시 생각하였다면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와 지금처럼 가던 길을 가야 한다는 자기 확신으로 원하지 않는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자기 스스로 의심이 들 때조차 우리는 생각을 리셋 하기 주저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하기의 중요성은 시간이 훌쩍 지난 후에야 알 수 있다.
이런 성향은 기업이 실패한 전략에 더욱 더 많은 물량과 인원을 투입하여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잘못된 경영을 초래하기도 하며, 비싸게 드래프트한 선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더 많은 경기에 투입시키는 실수를 유발하기도 한다.
매몰비용의 원인보다는 심리적으로 내가 내린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책을 읽어가며 나 자신을 체크해본다.
많은 사례에서 등장한 사람들과 별 차이 없다.
시험문제 풀 때 고쳐 쓰면 꼭 틀리더라는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살아온 바로 그 모양.
선택의 순간 다시한번 생각하고 다른 대안을 살펴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합리적이고 냉정한 선택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했을 순간의 장면들이 여러 건 떠오른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평생 살아온 사고방식의 틀을 깨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 생각하는 판단 프로세스에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이상 선택의 순간에 애덤 그랜트의 친근한 얼굴을 한 번 떠올려보는 습관만으로 조금은 탁월한 결정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