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 생전에 완성되고 출판된 첫 번째 소설이다. 카뮈의 ‘부조리 사상’이 본 소설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방인』이 발표된 1942년 파리는 독일 점령 하에 있었다. 칙칙한 안개에 젖은 절망의 파리에 눈부신 지중해의 태양이 지배하는 소설의 등장은 그 자체가 '이방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주제 면에서 동시대를 적실하게 꿰뚫고 있었다. 좀 전에 부조리란 합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의식과 불합리한 세계 사이의 대결로부터 탄생한다고 말한 바 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서구의 젊은이들에게 이 대결이야말로 일상생활 아니었을까? 전쟁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지만, 그 어느 질문에도 정답을 주지 않는다. 우리의 영광이 그들의 굴욕이 되고, 우리의 미덕이 그들의 악덕이 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더러운가? 무엇이 승리이고 무엇이 패배인가? 누가 압제자이고 누가 해방자인가? 인간은 누구이며,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방인』은 부조리의 우화답게 이야기가 온통 애매성에 물들어 있다. 『이방인』에서 통상의 기준으로 서열화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꽃이 돌보다 더 가치 있는 것도 아니요, 알제 생활이 파리 생활보다 덜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도 덜 중요한 것도 없이 모든 것의 가치는 평준화되어 있다. 뫼르소의 입버릇–'이러나 저러나 상관없어요' 혹은 '그건 중요치 않아요'–도 바로 이런 생각의 산물이다.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도 있고, 안 피울 수도 있다. 레몽과 친구가 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좋다. 파리로의 영전은 하등 중요한 일이 아닌데, 왜냐하면 알제 생활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리와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해줄 것이다. 이런 평준화된 가치의 삶에 있어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한들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이방인』의 마지막 몇 페이지는 형이상학적 반항의 폭발음 그 자체이다. 여기서는 인물도, 문체도 완전히 달라진다. 자유간접화법으로 처리된 단문들이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가운데 뫼르소는 평소의 무관심에서 벗어나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분노 속에 형무소 부속 사제의 멱살을 잡는다. 전자는 후자의 신앙을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는 것으로 비난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과거에도 옳았고, 현재에도 옳고, 미래에도 옳을 것으로 확신한다. 요컨대 죽음이라 불리는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뫼르소도, 사제도, 소설가도, 독자도 모두 처형일만 다를 뿐 사형수이기는 매한가지이다. 부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는, 즉 반항하지 못하는 사제에 대한 분노는 사형집행일 날 최대한의 증오의 함성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부조리를 의식하지 못하는 구경꾼들이 뫼르소를 더 증오하면 증오할수록 그의 죽음은 더 부조리한 죽음이 되기 때문이다.
카뮈에 의하면 뫼르소는 부조리라는 진실의 순교자, 즉 '우리들의 분수에 맞는 그리스도'이다. 새로운 그리스도의 약속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와 결부된다. 현재에 대한 충실, 산기슭으로 굴러 떨어질 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 올리는 저 시지프,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현재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저 사람들의 땀방울에만 우리들의 분수에 맞는 행복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의 약속이 아니라 대지의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그리스인, 이름하여 지중해인 뫼르소, 지중해인 카뮈가 우리에게 남긴 유일한 교훈이다. 카뮈의 친구인 사르트르, 『이방인』의 독자인 우리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간에 말이다.
줄거리
알제에 거주하는 젊은 사무원 뫼르소는 마랭고의 양로원으로부터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받고서 양로원으로 간다. 그리고 양로원 원장과의 대화, 문지기와의 대화, 문지기가 뫼르소에게 밀크 커피를 제공, 끝날 것 같지 않은 밤샘이 이어진다. 다음날 장례식을 마치고 알제로 돌아온다.
토요일이다. 잠에서 깨어나자 뫼르소는 해수욕을 하러 가고, 그곳에서 마리 카르도나를 만나 그날 저녁 영화관에 가고 함께 밤을 보낸다.
월요일. 뫼르소는 층계에서 살라마노 영감을 만난다. 그 영감은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이고, 그의 옆에는 구박덩어리 개가 항상 함께 있다. 그리고 같은 층에 사는 다른 이웃인 레이몽 생테스를 만난다. 그리고 레이몽과 친구가 된다.
한 주가 흘러간다. 토요일에 마리와 해수욕을 한다. 증인이 되어 달라는 레이몽의 부탁을 들어주고, 살라마노 영감이 방안에서 우는 소리를 듣는다.
레이몽이 한 친구의 알제 근처에 있는 조그만 별장에서 오는 일요일을 보내자고 뫼르소와 마리를 초대한다. 레이몽은 하루 종일 자기의 옛 정부의 오빠도 낀 한 패의 아랍인들에게서 미행을 당했다.
일요일에 뫼르소, 마리, 레이몽은 별장으로 간다. 그곳 해변에서 뫼르소는 아랍인을 권총으로 죽인다.
예심판사의 여러 차례의 심문이 이어진다. 예심이 11개월 동안 진행된다.
뫼르소의 감옥 생활, 마리의 면회와 감방에서의 뫼르소의 관심사들이 소개된다.
다시 여름이 되고, 재판이 시작된다. 심문을 통해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어머니 시신을 보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 담배를 피우고 밀크 커피를 마셨다는 것이 알려진다.
뫼르소는 마치 이방인처럼 법정에 앉아 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말을 하면서도, 결코 그에게 의견을 묻지 않는 것이다. 검사의 눈에는, 뫼르소가 범죄를 사전에 계획했다는 것이다. 검사는 피고의 ‘냉담함’을 고발하면서 여러 사실들을 추적한다.
뫼르소는 형무소 부속 사제의 면회를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사제와의 면회를 하게 된다. 이후 뫼르소는 자신의 사형집행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