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라는 글로벌 역병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사회는 이 거대한 환난의 시대를 극복하며 비로소 자신의 커진 몸집과 실력을 자각하게 되었다. 봄날 온갖 기화요초가 한꺼번에 터지듯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이 곳곳에서 만개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 윤여정 배우, BTS가 영화와 음악 영역에서 우리의 문화수준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자긍심을 가지게 해주더니 미국과 유럽제국들이 번번히 실패한 코로나 방역에 있어서도 선발 주자를 따라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타국의 모범사례가 되는 경지에 도달했다. 잘짜여진 의료 체계와 높은 시민의식 모두 다른 나라를 앞서는 수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의 GDP규모를 가지게 되었고 공공연히 한국을 포함시키기 위하여 G7을 G10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며 모두가 뒷걸음치는 코로나 이후 상황에서 코로나 이전의 경제수준을 가장 빨리 회복하는 나라가 될 것이 명백하다. 또한 2021년 7월 유엔경제총회인 운크타드는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 의결로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1964년 창설된 이래 개도국을 졸업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정말 눈 떠보니 우리는 어느새 선진국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선진국의 조건은 무엇일까? 또 그러한 조건에 비추어 보았을 때 한국은 진정한 선진국이 되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다년간 정보통신산업 분야에 종사하며 다양한 경험과 함께 이러한 고민을 해왔던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앞보다 뒤에 훨씬 많은 나라가 있는 상태에서 모방할 만한 선례가 점점 줄어들고 스스로가 선제적으로 뭔가를 '정의' 내려야 하는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즉 많은 나라들이 베낄만한 선례를 만드는 것이 선진국이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해답보다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둘째 데이타 기반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각종 데이타를 PDF 따위의 문서형태로 공개한다.이것을 컴퓨터로 처리하려면 별도의 처리를 거쳐야 하며 이에 따르는 시간과 비용이 데이타의 활용을 방해한다. 정부가 숫자로 된 자료들을 '구조화'된 형태로 공개한다면 민간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데이타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통찰이 빛나는 논문들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내에 정보와 데이타를 총괄하는 CIO(최고정보책임자)와 CDO(최고데이타책임자)를 두어서 정부 각부처의 정보와 데이타를 관리하게 함으로써 데이타 사회의 기반을 구축하여야 한다.
셋째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를 만들어야 선진국이 될수 있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기대수명을 높이고 문맹률, 영아사망률, 노인 자살률 따위의 부정적 지표들을 낮춤으로써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를 제고할 수 있다. GDP따위의 몸집만 불려서는 안되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중산층 비율'이라는 선진의 지표가 있다.
넷째 협상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즉 어린시절부터 합리적인 시민을 키우는 교육을 하여야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은 없다.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협상과 타협의 태도가 몸에 밴 시민이 한국을 가장 살기 좋은 선진국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다섯째 신뢰자본을 제대로 쓸 때이다. 인적, 물적 자본에 더해 한 사회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신뢰자본이다. 서울역에 검표원을 없앴듯이 사전 규제는 과감히 풀되 징벌을 과감하게 하자. 죄를 짓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용을 물릴 게 아니라 죄를 지은 몇몇 특히 화이트칼라 엘리트들에게 허리가 부러질 정도의 징벌적 배상제를 하자. 이게 우리 사회에 쌓인 신뢰자본을 제대로 활용하는 길이다. 신뢰자본을 제대로 쓴 사회가 선진국이다.
뉴런의 자유결합이 지능을 만드는 것처럼 재능의 자유결합이 경제를 꽃 피운다.민주주의는 한국의 경제와 문화를 위로 밀어 올리는 최고의 플랫폼이다. 당연한 듯 보이는 이런 K-민주주의는 기실 유리 그릇처럼 위태롭다. 사회 곳곳의 인재들을 생각에 따라, 정권과의 친소 관계에 맞춰 블랙리스트로 분류하고 갈라치기 했던 게 불과 몇년 전 일이다. 번영은 공짜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의 반열에 이르기에 아직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고 우리가 보완할 부분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공시족을 양산하고 선정적인 기사가 돈이 되며 성형외과를 선호하게 하는 고장난 인센티브 시스템을 수정해야 한다. 한 사회의 자원배분의 요체는 그 사회의 보상체계를 어떻게 만드는가에 달려있다. 돈도 인재도 그 사회가 파놓은 보상체계의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둘째 AI 시대에 맞춰 기본에 충실하며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서부터 변화구를 가르치는 일은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셋째 경로의존이나 경로독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쓰마와리, 나와바리, 도꾸다네 따위의 경로의존과 검찰의 기소독점 따위의 경로독점은 내지 않아도 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내게 만든다.
넷째 정치는 한 사회의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다. 스페인 FC바르셀로나의 '라마시아'처럼 뛰어난 젊은 정치인을 길러내기 위한 육성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는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 삼키는 시대에 살고 있다. AI 시대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공공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컴퓨팅적 사고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절실하다. 컴퓨팅 능력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