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을 좋아하는 이들 중 에 한번만 읽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 주기적으로 읽게 되는 책 리스트에 올려진 앤의 이야기는 늘 설렘을 준다.
줄거리는 작품해설 처럼 단순한 에피소드들로 이뤄진 성장소설이다.
1970년대와 1980년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빨강머리 앤을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앤 이라는 주제곡과 만화영화로 먼저 접했을 것이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초록 지붕 집에 사는 빨강 머리 앤이 상상력 풍부한 고아 소녀고 예쁜 길이나 풍경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것이다.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작은 시골 마을 에이번리에 사는 매슈 커스버트와 마릴라 커스버트 남매는 나이가 들어 힘이 부치자, 농장 일을 거들 남자아이를 입양하려 하지만 착오가 생겨 열한 살의 고아 소녀 앤 셜리를 맡아 키우게 된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자기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과 일손을 빌리려는 사람들 사이를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집다운 집에 살게된 앤 셜리는, 원래의 이름보다 로맨틱한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상상할 거리만 눈에 띄면 몽상에 빠져들어 하던 일을 까먹기 일쑤인 못 말리는 실수투성이 아이였다. 본래 풍부한 상상력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앤을 둘러싼 고되고 외로운 일상이 감수성 넘치는 소녀를 더 상상 속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빨강 머리 앤에 가장 도도라진 장점은 생기발랄한 주인공과 낭만적인 줄거리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빨강 머리 앤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랑받는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치면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라나는 고아 소녀의 성장기가 갖는 매력에 있을 것이다.
앤은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원하는 목표를 향해 곧게 뻗은 길을 걸어 승승장구하지 않는다. 그렇게 뻗어 있을 것만 같던 길 위에서 원대한 포부를 잠시 접고 무엇이 나올지 모를 길모퉁이로 접어든다. 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어쩌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꿈을 보류하는 아름다운 희생정신이었을 수도 있고 시대적 압박일수도 있지만 예기치 못한 일에도 긍정적으로 자기 생을 일으켜 나갈 강한 힘이 앤에게 있을 것을 알기에 위로를 받는다.
앤에게는 언제나 관대한 매튜의 무한사랑만큼, 엄격한 마릴라의 걱정 또한 부모의 마음 그대로가 아닐까 했다.
상황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은 앤에게 천성을 바꾸라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앤이 그렇듯이 ' 순수한 영혼에 불처럼 뜨겁고 이슬처럼 맑은 ' 사람에게는 언제나 삶의 즐거움과 괴로움 이 강렬하게 찾아왔다 마릴라도 이것을 알기에 막연하지만 걱정 이 되었다. 세상을 살면서 반복될 기쁜 일과 슬픈 일들이 이 충동적인 아이에게 얼마나 힘겨울까, 똑같은 크기로 기쁨 이 다가온다 해도 과연 고통 이 지나간 자리를 치유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마릴라 는 앤을 차분 하고 평온한 성품 의 아이로 키우는 게 자신의 임무 라고 생각 했지만 , 그것은 얕은 개울 위에서 일렁이는 햇빛을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낯설고 불가능 한 일이었다. 서글프지만 마릴라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앤은 간절한 희망 이나 계획이 무산되면 '고통의 나락'으로 거꾸러졌고 , 반대로 기대가 이루어지면 아찔한 '환희의 왕국 ' 으로 날아올랐다. 마릴라 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아이를 얌전 하고 반듯한 모범생 으로 만들겠다던 생각을 거의 포기했다. 게다가 마릴라 자신조차 그렇게 바뀐 앤을 지금 보다 더 좋아할것 같지 않았다.
앤과 마릴라의 관계를 잘 드러낸 대목이라는 생각이다. 앤만큼 상장한 마릴라의 생각이 공감과 함께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하는것이다.
마릴라와 매튜가 앤을 사랑하게 되는 동안 읽는 이들도 앤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애정어린 맘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