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접했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편, 그리고 유홍준 교수님의 정겨운 글투가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이시대의 평범한 40대 직장인으로서 수년만에 제주 답사기를 다시 펴 내셨고, 더군다나 요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해외로 나가지 못하는 여행수요를 오롯이 소화하느라 북적거리고 있다는 제주에 대한 책을 발견하고 독서통신 연수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이 책을 읽고 여름~가을내 가족여행 기회를 만들어서 책속에 소개된 장소를 직접 방문해보고 눈과 발로서 접하고 싶었는데, 바쁜 업무일정과 가족 구성원들 스케쥴로 인해 실현하지 못한게 아쉬웠습니다. 모쪼록 내년에는 미리 항공편도 구해서 책과 함께 구석구석 누비며 인상깊은 부분을 음미하며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허자로 시작하는 렌터카 번호판을 모티브로 제주허씨(렌터카 여행 관광객)를 위한 제주학 안내서로 기술한 서문도 무척 인상적이고 재미있었고, 특히 제주답사 일번지로 하나씩 안내해주시는 와흘 본향당, 조천 너븐숭이, 다랑쉬오름 등등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눈에 선히 보이듯이 재미난 화법으로 안내해주시는듯해서 유교수님 답사팀의 일원이 된듯한 느낌으로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씩 안내해주시는 내용들을 접하다보니 그동안 나름 십수번 이상 제주도를 여행이며 출장 등으로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방문한적이 없는곳이기에 무척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들 좋다는곳, 또는 현대적으로 개발하고 꾸며놓은 명소나 맛집들 찾아다닐 생각만 했지, 정작 제주의 찬란하면서도 가슴아픈 역사와 전통, 억센 자연환경을 견디며 굳세게 살아온 제주인들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진정한 명소를 왜 그동안 도전해볼 생각을 못(안)했는지 뒤늦게 후회가 밀려오면서, 지금부터라도 기회 될때마다 한곳씩 직접 방문해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진솔한 제주여행을 계획해보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학창시절 4.3사태? 제주사태? 등의 군사정권 용어로 배웠었던 제주 4.3민중항쟁의 아픈 기억이 서려있는 중산간마을, 다랑쉬오름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담담이 풀어서 설명해주시고, 순이삼촌 등 교수님의 지인들과 나누신 말씀과 예술인들의 작품을 통해 전해주시는 부분이 더욱 깊은 울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전 고려나 조선시대때도 대몽항쟁, 유배지 등으로 멀고먼 이질적인 공간이었으면서, 일제강점기에는 각종 해안터널 및 군사기지화, 물자수탈로 아픔을 겪었던데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전후해서는 무고한 양민들이 셀수없이 많이 희생된 가슴아픈 사건들까지, 지금의 너무도 눈부시고 화창한 자연환경과 천혜의 비경 속에 숨겨진 가슴시린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듯 합니다.
한라산 윗세오름 등반기에서는 2018년초 회사 산악부 선배들과 함께 한라산 겨울 눈꽃산행을 다녀왔던 시간이 떠오르며, 해수면에 가까운곳에서는 열대의 이국적인 풍광을, 그리고 정상부근에서는 매서운 겨울추위에 키낮은 나무에 핀 눈꽃을 즐기며 신기해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탐라국 순례 부분에서는 오래전 삼국시대, 고려,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문화/역사 유적과 제주의 자연, 제주방언에 남아있는 유구한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주의 서남쪽 편에서는 제주 돼지고기 맛집을 찾아가며 지나쳤던 송악산과, 추사 유배지, 그리고 드넓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거센 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던 모슬포에 대해 그동안 잘 몰랐던 재미있는 사실과 스토리를 차분히 설명해주시는 교수님의 글에 흠뻑 빠져 눈앞에 선히 그림이 그려지는듯한 기분으로 읽어내려갔습니다. 머나먼 이국 조선땅에 표류했던 하멜의 비하인드 스토리, 일제시대와 4.3의 아픔이 서려있는 진지동굴, 알뜨르비행장, 백조일손지묘, 그리고 김지하 시인의 '빈 산'까지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한발짝 다가간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시리와 돈내코까지 부분에서는, 특이한 지명을 보고 언제 한번 들러봐야지 생각만하다가 정작 방문은 못하고 일주도로를 운전하며 표지판만 보았던 기억이 났었고, 조랑말에 대한 역사, 그리고 제주를 사랑한 이중섭 선생과 석주명 선생에 대해서도 다시금 그분들의 사연과 업적, 제주에서 보낸 그분들의 상황과 아픔, 업적들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