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소재로 한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면 강력히 추천하는 책.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는 철학책은 세상에 흔치 않다. 저자인 에릭 와이너(Eric Weiner)는 기자 출신의 유쾌한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그가 펴낸 책들은 “빌 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 드 보통의 통찰력이 만났다”는 평을 받으며 세계 각국에서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번역을 하신 김하현 선생님께서 위트 있는 문장들을 솜씨 있게 옮겨주신 덕분에 멈칫거리지 않고 깔깔 웃을 수 있었다.
우선 목차에 홀렸다. 책은 새벽, 정오, 황혼의 3부로 나누어지는데, ‘새벽’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이며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등이, ‘정오’에는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황혼’에는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몽테뉴처럼 죽는 법 같은 게 들어있다. 이렇게 핵심을 찌르면서도 유쾌한 목차라면, 이 사람에게 그 깜깜하기로 악명 높은 철학의 숲길 안내를 맡겨도 좋을 거라는 직감이 든다. 그 직감은 맞았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끼얹어진 유머가 얼마나 뇌세포와 안면근육을 동시에 저격하던지, 나는 불이 들어오는 전구처럼 뇌를 반짝이는 동시에 내 허파를 스코틀랜드 백파이프처럼 연주하며 이 책을 읽었다.
저자는 직접 고른 열네 명의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좇아 그들이 실제로 살았던 곳이나 그들의 철학이 의미를 가지는 장소들을 하나씩 돌아본다. 주로 기차를 타고. 그래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이 붙었나 보다. 기차는 우리가 생각을 할 수 있는 속도로 달리며, 약간은 시대에 뒤떨어진 퀴퀴한 느낌이 있다는 점에서 철학과 잘 어울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그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우리를 태워 그리스 아테네,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인도의 델리, 일본 교토, 스위스의 실스마리아, 미국의 와이오밍과 월든, 프랑스 파리 등지를 돌아다닌다.
전공자의 눈으로 봤을 땐 사실 이 책이 생각만큼 철학을 많이 다루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소크라테스 챕터의 밸런스가 무척 좋았는데, 다른 철학자들에게선 그들의 철학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철학자에 더 집중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학술서적을 의도한 게 아닌 이상 이런 느슨함이 오히려 장점이겠다. 사람들이 철학에 관심을 갖게 하거나 철학자라는 종족에게 애정을 갖게 하기엔 차고 넘칠 만큼 충분하다. 독자들은 그동안 좀 어려웠거나 꼴 보기 싫었던 철학자들이 굉장히 사랑스러워지거나 만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는 아마 최애 철학자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심심할 때 카톡 보내고 싶은 철학자, 같이 술 마시고 싶은 철학자, 길을 잃는 순간 멘토로 소환하고 싶은 철학자. 프로듀스 101에서처럼, 책을 다 읽고 나서 당신의 철학자에게 투표하셔도 좋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쇼펜하우어에게 투표하고 싶어졌다. 나의 원픽은 늘 장자였는데, 아쉽게도 세상 힙한 장자 할아버지는 이 책에 등장하지 않으신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에 흄이 등장하여 존재와 당위를 논한다. 이게 이럴 일인가 싶지만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편안한 이불 속에서 발버둥치며 세상과 타인, 사명과 의무에 대한 배꼽 빠지는 성찰을 이어간다. 질문왕 소크라테스를 데려와서는 철학의 본질인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더 이상 질문을 오래 품으며 살지 않는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여기엔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지 않는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다”라는 피터 크리프트의 말이 덧붙여진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전혀 진보하지 않은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루소의 철학을 바라보고, 쇼펜하우어와 함께 귀를 쫑긋 세우고 세상의 말과 음악을 들으며 고통을 유예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과 영역을 살핀다. 에피쿠로스를 만나 온갖 불필요한 ‘텅 빈 욕망’ 더미 위에 쌓여 있는 우리의 소비문화를 돌아본다거나, 결과 중심적인 오늘날의 세상에서 오로지 과정에 100퍼센트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하며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 사람은 스스로를 집어삼킨다”고 했던 간디의 말을 떠올려 보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이다. 노인 행동주의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보부아르를 보면서 어떻게 늙어야 할지, 세상사에 남달리 무능했던 몽테뉴와 어깨동무를 하고 죽음에 어떻게 맞설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감해지는 현대 사회에 ‘관심의 철학자’ 시몬 베유를 소개한 것도, 일본의 궁녀였던 세이 쇼나곤을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철학자로 담은 것도 좋았다.
이 책은 무엇보다 철학자들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철학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으로 썼다. 철학자들의 신체 특징이며 생활습관 같은 것을 이 정도로 상세하게 모아놓은 책도 드물지 싶다. 그만큼 철학적 사고는 정신뿐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가만히 앉아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에 방점을 찍는 책이다. 에릭 와이너는 철학을 굉장히 실용적으로 바라보고, 실제 우리 삶 속에 철학이 어떻게 스며들 수 있는지 유쾌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