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습관처럼 핸드폰을 손에 쥐고 화면을 열어 뉴스를 킨다. 일단 관심이 가는 헤드라인이 보일때까지는 제목만 눈으로 살살 훑어도 대강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예전 부모님 시대에는 조간뉴스 석간뉴스 정도로 하루에 두번만 확인하면 되었을 일인데, 핸드폰이 모두의 손에 쥐어진 요즘은 그야말로 실시간 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간혹 일하다 바빠서 몇시간 동안 확인 못하게 되면, 그 사이에도 수많은 일이 발생하고 다른사람이 무슨 소식 들었냐고 물어본다. 그야말로 뉴스의 시대다. 뉴스 홍수의 시대. 이 책은 이렇게 우리가 매일 접하는 수많은 뉴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뉴스는 우리에게 각기 할당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거나 흥미진진한 문제들을 찾아냄으로써, 그리고 이 더 큰 관심사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불안과 의심을 삼켜버리도록 용인함으로써 우리를 사로잡은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일생동안 뉴스에 그토록 많은 시간과 열정을 할애하는 이유를 알랭드보통은 이렇게 분석한다. 그리고 뉴스의 분야별로 분석해 다루었는데 이중 정치뉴스와 관련해서 인상깊은 통찰력은 아래와 같다.
"민주정치의 진정한 적은 다름아닌 뉴스에 대한 적극적인 검열이라고 여기기 쉽다...권력을 공고히하길 소망하는 당대의 독재자는 뉴스통제 같은 눈에 빤히 보이는 사악한 짓을 저지를 필요가 없다. 그는 언론으로 하여금 닥치는 대로 단신을 흘려보내게만 하면 된다.... 현상태는 뉴스를 통제하기보다 오히려 흘러넘치게 할 때 오래도록 충실하게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알랭드보통의 이러한 통찰력보다 우리나라 정치 수준은 한 수 더 위라는 사실. 여러 단신을 흘러넘치게하는것보다 자극적인 기삿거리를 그날 속보로 터뜨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할텐데 말이다. 늘 정치적으로 정권에 불리한 뉴스거리가 터질때면, 한편에서는 탑 셀러브리티의 과거사, 연애사 등등 자극적인 뉴스가 함께 속보로 나오는것을 경험한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왜 하필 이시점에?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대중을 길들이기 위한 나름 정형화된 패턴 혹은 수법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골치아프고 봐도 머리아픈 XX게이트 사건일지를 읽고 있느니, 남자연예인의 옛연인 폭로글이 너무나 쉽게 읽히는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눈에 빤히 보이면서도 매번 속아넘어가는 대중(나 포함)을 보고 있자니, 부정적인 뉴스를 막을 필요성이 없어 보인다.
불행한 사건을 다루는 뉴스 중에서도 주목도가 높고 대중적인 또하나의 분야이며, 특정한 인물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수 없는 재난뉴스에 우리는 왜 흥미를 느끼는 것인가. 이런 뉴스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에 대해서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끔찍한 사고는 동시에 삶에 새롭게 초점을 맞추는 계기를 제공한다...사고에 관한 뉴스는 삶이란게 이렇게나 취약하고 우리 앞에 몇십년의 시간이 남아있다는게 결코 보장될 수 없다면...죽음데 대한 생각이 삶의 의미를 회복시켜준다...". 방금까지도 아이가 숙제를 안해서, 아이의 사춘기로 인한 반항에 화가나서, 아이가 또 집안을 엉망을 만들어서 등 각종 이유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아이와 싸운 뒤에, 뉴스를 통해 한 아이나 한 가족의 비극적인 사고 뉴스를 접했다면...방금까지 화냈던 감정이 다 소모적이고 화냈던 이유조차 너무나 작게 느껴질 것이다. 그저 아이가 건강한 것에 감사하고, 나와 이렇게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단순한 일상이 행복으로 여겨지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재난 뉴스의 비극이 주는 상대적인 역설같지만,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뉴스가 TV에, 핸드폰에, 뒷자석 스크린에, 아이워치 등 시계를 통해 우리의 삶과 우리의 내면에 침투되기를 소망하고, 항상 우리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또 필연적으로 뉴스는 늘 올바를 수 없다. 올바를수만은 없는 뉴스의 홍수속에 어떤 정보를 선택해야하나. 저자는 우리가 먼저 자신만의 생각을 잉태시킬만한 인내심 많은 산파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단단한 무엇을 하나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무선신호를 끊고 읽을 거리도 손에 쥐지 않은채 멀리 기차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뉴스가 더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때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핸드펀을 집에두고 회사에 출근했을때, 핸드폰으로 중요한 연락이 와있을것 같아 초조했지만 막상 집에와서 확인했을때 아무런 연락도 없던 날 같이, 뉴스를 보지 않아도 큰 일이 생기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