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10년 우리나라에 '정의'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美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3부작 (정의란 무엇인가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공정하다는 착각) 중 3부에 해당하는 저서이다. 독서를 마친 첫번째 소감은 이번 작품이 결코 마이클 샌댈 교수의 마지막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유명 교수의 책 몇권으로 해결되기에는 오늘 날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너무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선견지명에 의한 조언을 받아들여 원만하고 부드럽게 세상이 변하길 희망하지만, 그동안의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특히 빈부격차에 의한 양극화 문제는 항상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조정이 이루어 졌기에 나날이 심해져가는 지구촌 전체의 불균형이 불안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고려시대 과거제도가 도입된 이래 1,000년 가까운 세월을 '과거'제라는 능력주의 신화속에서 살아오며 우리 민족의 DNA에 각인 된 자수성가 컴플랙스는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우려하고 있는 능력주의의 폭정의 결과가 어쩌면 우리나라 우리사회에서 가장 심각하고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책을 읽는 내내 가슴속을 무겁게 짓누르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떻게 중심을 잡고, 어떻게 우리 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이 실천으로 연결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만약 책 한권에 행동이 바뀔 수 있다면, 아마 새벽형 인간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고민과 생각이 큰 변화의 작은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기대에 작은 희망을 걸어 본다. 그 시작의 단서는 '겸손'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 속의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있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 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오래전 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로 들었던 '겸손'이 오늘날 이 세계를 구원하고 양극화로 벌어진 사회를 다시 묶을 수 있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말도 떠오르고 동서고금을 망론하고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떠오른다.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지 않아서 안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만족스럽던 그렇지 않던 간에 모두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면 특히 지금의 상황에 만족해 하고 있는 소위 상류층 엘리트 입장에서 우연에 의해 지금 누리는 것들이 사라질 수 있다면 등골이 오싹해 지고 조금은 겸손한 자세로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과 함께 공존함으로써 이 사회를 좀더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 또한 그리 가진것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 더 겸손해지고, 주변을 돌아 보려고 한다. 경비업무를 하시는 분, 청소일을 하시는 분, 마트에 가는 수고를 대신해서 택배일을 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내려고 노력해 보려한다. 또 아주 미미한 금액일지라도 좀 더 어려운 분들을 위해 나누려는 행동도 계속 해 나가야 겠다. 우리 옛 속담에도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했고' 성경에서도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만큼 어렵다'고 했다. 물론 능력을 계발하고 그를 통해 사회에 부가가치를 많이 기여하는 사람이 되는 노력은 당연히 지속되어야 하겠지만, 눈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맹목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산에 오를떄 주변 풍광은 전혀 즐기기 못하고 오로지 정상만을 바라보고 땀을 흘린다면 그런 사람을 얼마나 불행하고 어리석게 보겠는가. 능력주의의 폭정에 맞서 겸손이라고 하는 작은 촛불을 들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