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원제: To Kill a Mockingbird)' 는 어느 순간부터 고등학생들 뿐 아니라 중학생들에게까지도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전혀 다루지 않았던 책이이었습니다만, 지금의 중고등학생들 중에서는 이 책을 모르는 학생을 찾기가 더 어려울 거 같습니다.
1961년에 처음 출판이 된 책이고, 출판 후 바로 수백만부가 팔려나가고 영화화가 되어 아카데미 상의 여러 부문에서 수상한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 가치가 있는 작품임은 분명한 거 같습니다. 이 책을 저는 제대로 읽은 것은 지금에서야 처음인데요. 하나씩 이 작품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1. 앵무새 죽이기의 줄거리 및 다루고 있는 주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 이 책을 다 읽어보지 않은 학생들도 이 책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인권 문제를 주제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정도는 알고 있을 거 같습니다.
- 이 책의 앞부분에는 인종 차별과 흑인의 인권 등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유년 시기를 그립니다. 그냥 읽어보면 그저 흔한 성장소설 정도로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중반부 즘 되면서 흑인 '톰 로빈슨'이 백인 여성을 강간한 사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어집니다.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은 사실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백인 여성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고, 변호사이자 주인공의 아버지인 애디커스 핀치가 톰 로빈슨의 변호인을 맞게 됩니다.
- 작품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시기만 하더라도 백인과 흑인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이 되던 시기입니다. 당연히 백인 변호사가 흑인의 변호를 맞아 법정에서 백인인 상대편과 맞서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시기였고, 주인공의 아버지가 흑인의 변호를 하는 사실을 중심으로 마을에서 여러 갈등 상황이 벌어집니다.
-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진 루이스 핀치는 6살의 꼬마 여자아이인데, 6살의 시각에서 다른 등장인물들과 사건을 바라보고 기술하면서 흑인과 백인과의 갈등, 인종차별과 인권 문제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 이 책의 제목인 '앵무새 죽이기(원제: To Kill a Mockingbird)' 자체가 이 작품의 주제이자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다른 새들과 달리 앵무새(Mockingbird, 엄밀히 말하면 앵무새라기 보다는 흉내내기지빠귀라는 새이지만, 앵무새로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됨) 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앵무새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뿐, 다른 새들처럼 곡식을 먹거나 창고에 둥지를 트는 등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톰로빈슨이나 부 래들리 같은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약자로서, 사람들의 편견이나 아집때문에 고통받고 목숨을 잃는 '앵무새'와 같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 책의 제목인 '앵무새죽이기'는 약자에 대한 편견과 아집으로 이들을 생물학적으로든 사회적으로 '죽이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필독서가 된 이유.
- 문학의 가치는 여러 측면에서 찾아 볼 수 있겠지만, 이 책의 가치는 '1930년대'의 '미국 앨라배마주'를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930년대'는 대공황이 휩쓸고 간 시기이고, 경제적 어려움과 부족한 일자리 등의 문제 때문에 인종간 경쟁과 갈등이 심화될 수 밖에 없던 시기입니다.
또한 이 시기는 인권이나 인종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아직은 모두가 무지하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1931년에 '스코츠보로 재판 사건'이라 불리는, 백인과 흑인 청년간 싸움이 벌어지고, 백인 여성들이 흑인들이 자신들을 강간했다고 거짓 주장해 흑인 청년들이 20년간 재판으로 고통받은 실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책 내용과 매우 유사한데, 앵무새 죽이기는 이 실제 사건이 중요 모티브가 되었을 것입니다.
'앨라배마 주'는 이 시기 미국 남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남부의 특성상 흑인과 백인의 구별과 차별이 끝까지 지속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마틴루터킹 목사가 활동하던 곳도, 흑인 인권 운동이 촉발되고 확산을 이끈 곳도 이곳입니다. 그냥 우연히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북부 등 다른 지역에서 흑인의 인권이 서서히 높아질때도 여전히 흑인과 백인의 출입구가 따로 존재하고, 인격적 모독과 차별이 지속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앵무새죽이기'를 꼼꼼히 읽다보면, 직접적으로 차별의 단어나 표현을 쓰고 있지 않더라도 등장 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들을 통해 이 시기 이 공간에 존재하던 문제들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3.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에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
- 앞의 내용들을 이어서 이야기해봅시다. 1960년대 초반(작품의 배경은 30년대이지만 작품이 출간된 것은 1961년) 에 흑인 인종 차별의 문제를, 여성 작가가 다루었고 대중적으로 매우 큰 성공을 거둔 거의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했고, 변화하게 만드는 것에 큰 공헌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 다만 현재의 시각으로 보자면 개인적으로는 한계가 많이 보입니다. (이 작품을 현재의 시각으로 본다는 자체가 무리가 있긴 합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크게 고민을 했던 부분 한 가지만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 책의 주제 자체가 '흑인'에 관한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나 소설이 쓰여진 시기에는 '흑인에 대한 차별, 인종차별, 흑인의 인권문제'가 가장 큰 사회적 화두였음에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 대립구도가 매우 명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흑인 = 선량하고 착한데 약자로서 피해보는 존재.
나쁜 백인 = 백인으로서 흑인을 괴롭히는 악한 존재.
착한 백인 = 변호사, 보안관 등 정의로우면서 인정도 있어서 나쁜 백인에 맞서고 흑인들을 도와주는 존재.
로 저는 계속 읽혀졌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왜 민주화 이야기는 안 다루었냐고 말도 안되는 딴지를 거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애당초 국제시장은 민주화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민주화가 안나오는것은 비판받을 꺼리가 아닙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처음 앵무새죽이기라는 소설을 접한다면, 애당초 처음에 너무 1차원적인 이분법적 접근으로 교육을 하거나 지도를 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2020년 현재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 양상이나 그 가운데 있는 문제들은 무 자르듯 딱딱 나누어 규정하고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과연 부자들은 나쁘고 가난하면 선량한 피해자이던가? 가난한 사람이 또 다른 이민자나 이방인에 대해서는 폭력을 주도적으로 행사하지는 않는가?
하퍼리의 시대에는 '인종'이라는 화두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어렵지 않았다면, 지금은 인종 뿐 아니라 경제적 차이, 젠더, 국적, 사는 곳 등 곳곳에 구별짓기와 혐오의 트리거가 될 수 있는 것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중고등학생들은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혐오'라는 관점에서 현재에 맞는 방식으로 비판적 사고를 해 보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