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문화유산답사기는 나를 설레게 하는 책이다. 서울편이 나왔다고 했을때 사야지 마음만 먹고 못사고 있다가, 독서통신연수에 등재되어있는 것을 보고 신나게 주문을 눌렀다. 책이 도착했다. 아뿔사. 서울편'2'였구나.
아무렴 어떠랴. '1'은 나중에 또 보면 되지.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라는 IP와 내가 좋아하는 서울. 그 두 가지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별다섯개로 시작하는 독서였다.
이 책은 한양 도성부터 자문밖, 덕수궁과 주변 궁들, 왕묘, 성균관으로 발자취를 옮겨간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읽을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아는곳이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고 머리에 쏙쏙 들어올수가 없다. 그러니 서울편은 전반적으로 반갑고, 책을 읽는 동안 글씨가 그림, 사진이 되는 마법같은 시간이었다.
서울은 세계 굴지의 고도 중 하나이다. 서울은 아늑한 분지에 자리잡고 그 남쪽으로(옛 한양을 기준으로 남쪽) 큰 강을 낀 지형적으로 완벽한 도시이다. 작가는 서울을 소개함에 앞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무학대사의 전설에 대해 언급한다. 왕십리, 무학재...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태조가 즉위하여 천도하던 시기의 한양이 우리 상상처럼 일개 산중의 분지가 아니라 남경이라 불리며 별궁도 있던 이미 발전한 고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당황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서울의 건치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자세히 설명해주어 마치 600년전 한양도성 어딘가에 있는듯한 착각에 기분마저 묘했다.
작가는 자문밖을 소개하면서 서울사람이라면 '창의문'은 몰라도 '자문밖'이라면 금방 안다고 했지만, 나는 창의문은 알아도 자문밖은 처음들어보았다. 부암동, 구기동, 평창동..부자마을과 안친해서 그런가? 아무튼 자문밖이라는 표현을 저음 접하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비록 자문밖은 몰라도 자문밖으로 불린다는 부암동, 평창동, 구기동 등을 좋아한다. 왠지 고즈넉하고, 왠지 전통있고, 왠지 기품있다. 그런데 나의 느낌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조선시대 군사구역이라고 하고, 20세기 들어 서울이 팽창하면서 자문밖이 고양군에서 서울시로 편입되었다고 하니, 진짜 서울로서의 전통이 긴 것도, 특별히 기품있을 것도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많은것들이 빗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매력있는 동네다. 언급된 장의사, 탕춘대, 라디오 교통정보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홍지문"조차 다시 한번 가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그 다음은 "유주학선 무주학불"이 소제목이다. 본 책의 부제이기도 해서 궁굼했다. 무슨 뜻일까?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운다"라는 뜻으로, 미국 하버드대학의 아서새클러 뮤지엄에 소장된 석파 이하응의 "석란도" 10곡 병풍에 석파가 사용한 문자도장들이 각 폭마다 찍혀있는데, 그 중 제4폭에 찍힌 도장의 문구라고 한다. 이하응이라는 자의 풍류를 알수 있게 해준다. 흥선대원군.이하응.석파. 같은 사람이 아닌것 같은 느낌이다. 석파랑 위의 석파정 별당에 가서 그가 꿈꾸었던 세상과 풍류를 함께 느끼고 싶어졌다.
이제 우리를 덕수궁으로 안내한다. 나는 경복궁, 덕수궁을 어렸을때부터 좋아했고 동경해왔다. 정확히는 경복궁 덕수궁이라기 보다 경복궁 덕수궁이 자리잡은 광화문 일대부터 시청까지, 번화하면서도 옛것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 풍경에 경외감을 느꼈다는게 보다 정확할 것 같다. 하지만 경복궁(그리고 예전 창경궁), 덕수궁은 격동의 왕조 말기, 대한제국의 역사만틈이나 갖은 수난과 변화를 겪어왔다. 현재는 또 변모하여 공원으로서의 덕수궁으로, 미술관으로서의 덕수궁으로, 돌담길 명소로서의 덕수궁으로 사랑받고 있다. 현대사회의 데이트코스로서의 덕수궁도, 아픈 역사의 우수를 떠올리는 덕수궁도 모두 우리가 기억하고 사랑하하는 그 덕수궁인 것이다.
책에는 그밖에도 많은 서울의 궁궐과 왕묘, 그리고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 어쩌면 너무 익숙하고, 때로는 지겨워서 주말까지 머물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마저 만연한 이곳 서울이, 그대로 역사이고, 문화유산이라는것을 너무 잊고 사는 것 같다. 서울을 지겨워하는 이들이 꼭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처럼 서울을 애정하는 사람 또한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