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지도.. 7년의 밤의 배경이 되는 세령마을, 520쪽의 방대한 분량의 추리소설이지만, 쑥쑥 읽어지고 속이 뜨끔뜨끔해질 때도 간혹 있었다. 정유정 작가의 치밀한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라 세령마을이 정말 어딘가 있을것같고 두렵다. 7년의 밤을 읽느 내내 지도를 다시 들추어 보면서 세령마을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 이었다" 2004년 9월 12일 새벽은 내가 아버지 편에 서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다. 아버지가 체포됐다는 사실도, 어머니의 죽음도, 밤사이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도, 막연하고도 어렴풋한 불안을 느꼈을 뿐이다. 아저씨의 손을 잡고 두 시간ㅇ 숨어있던 세령목장 축사를 나선 후에야, 뭔가 잘못됐다는 확신이 왔다. - 7년의 밤 P.6
"감사합니다, 오영제 치과입니다" 승환은 전화를 끊었다 상황의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오영제와 팀장은 전혀 다른 의미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위태로웠다. 오영제는 살해당한 아이의 아빠였다. 충돌지점을 향해 폭주하는 자동차였다. 팀장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았고, 침몰하는 난파선이어ㅓㅆ다. 두 극점 사이에서"어떤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게 어떤 일인지 도무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짐작할 만한 단서가 없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많은 것을 말하는 눈이었다. 분노와 두려움. 현실에서 자신을 탈출시키고자하는 잘 절박함. 어둠으로 치닫는 자의 절망.- 7의 밤 P.369
"곧 재미난 쇼를 보게 될거야" 리모컨을 누르며 영제가 말했다. 현수는 등으로 내달리는 싸늘한 전율을 느꼈다. 자신의 손목을 끊어놓은 뭉치보다 더 기분 나쁜말이었다. 글이라고는 자기소개서밖에 써본적이 없는 그였지만, 보다와 하다의 차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다 라면 영제의 상대는 자신이었다. 보다라면, 대상과 무대가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은 무대밖의 관객이라는 의미였다. 어디서, 무슨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지금껏 읽었던 판을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였던가.7년의 밤P420
제목처럼 7년의 밤 동안 아버지와 아들에게 일어나는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열두살 서원은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족쇄를 차고 기죽어 살아간다. 세령호의 재앙이라는 사건의 진범이 서원의 아버지라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살인자의 자식 서원은 세령마을에서 승환을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한다. 살인자는 밉지만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쓰고 살아가는 아이의 심정과 모습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에 마음이 무겁다. 피해야하는 악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를 두려워하는 우리드르이 눈빛을 서원은 늘 겪었을 것이고, 안쓰럽고, 죄책감같은 미안암이 늘 교차한다. 서원을 받아주고 보호해주는 승환은 소설가이다. 서원의 아버지인 살인자의 부하직원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피해 승환에게 잠수를 배우며 조용히 살아가는 서원으 ㄴ살이자 아버지의 사형집행 확정 소식을 듣는다. 승환과 서원은 스쿠버다이빙을 하다 사고를 당한 청년을 구조하는 사건으로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되는데, 의문의 상자가 배달된다. 상자속에 승환이 7년전의 세령호의 재앙을 낱낱이 기혹한 소설이 들어있다. 진짜 쫄깃해지는 대목이고 이제 책을 읽는것 외에 아무것도 못함을 예견한다. 7년전 우발적으로 어린 소녀를 살해한 뒤 죄책감으로 미쳐가는 남자와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의 아들에게 복수를 시도하는 오영제. 소설속 오영재는 정말 끔찍한 괴물이다. 딸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오영제일지 최현수일지 정말 팽팽해 눈을 뗄수가 없다. 악의 책 추리소설의 대가 정유정 작가는 간호사 출신이라 그런지 그녀의 글에는 피가 보이고 피비린내도 맡을수있다. 박진감 넘치는 혈투 장면에서는 맥방이 요동치고, 피가 멈추는 듯 숨도 쉬어지지 않는다. 물론 모든 추리소설의 결말은 제자리를 찾아주지만 그걸 기대하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이 우습다.
정유정 작가의 대표작의 하나로, 디테일한 묘사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 다음..그다음으로 궁금증을 이어가며 소설에빠져들고, 진실을 알고 싶은 나는 다음장의 내용을 파헤지며, 진실을 찾고싶어한다. 섬세한 묘사 덕분에 책을 읽으며 상상을 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역시 정유정 작가의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