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위해서 싸우던 적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시라이시 겐스케라는 국선 변호사가 살해 당한 채 발견된다. 살해당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희생자의 높은 명망 덕에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그런데 시라이시의 통화 목록에 들어 있던 구라키라는 남자가 갑자기 고백하며 사건은 해결된 듯 보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33년전 자신이 저지른 금융업자 살해 사건 때문이라고 자백하면서 모두를 경악하게 한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었던 한 남자가, 결백을 주장하다가 유치장 안에서 자살했고, 경찰은 그것으로 사건을 끝냈기 때문이다. 경시청 형사 고다이와 파트너 나카마히는 큰 공을 세우게 되었으나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는 없지만 떨쳐낼 수 없는 찜찜함이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스토리는 자백을 한 구라키라는 남자의 아들 가즈마의 시점으로 다시 시작된다.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갑자기 살인자의 아들이 되어버린 사람, 자신에 대해 사람들은 공격하기 시작한다 직장도 친구도 더 이상 기대거나 믿을 수 없게 되고 사건을 저지른 아버지로 자신의 면회를 거절하며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다. 한 순간에 바뀐 자신의 처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아버지가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자 스스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무언가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또 그 시점에서 피해자 시라이시의 딸 미레이도 수사결과에 의문을 품은 채 아버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라며 카즈마와 정보 공유를 하며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봐도 어쩌면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그래서 나름대로 알아보려고 찾아 왔어요"
구라키 용의자가 아버지에 대해 진술한 내용을 듣고 시라이시는 절대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라며 조사를 시작한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치과 기록을 찾게 되는데 아버지와 구라키가 만났다는 진술 속 야구장에서 만난 날짜가 임플란트를 위해 발치를 받은 날짜임을 알게 되고 거짓 진술을 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경찰이 구라키 용의자를 조사하던 중 '아스나루'가게 단골 손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깊이 수사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경찰이라면 무조건 싫어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란 바로 33년전 그 사건에서 범인으로 오해 받고 유치장에서 자살하게 된 그 남자의 아내와 딸이 운영하는 가게란 것을 알게 된다.
33년전 살인 사건에 용의선 상에 올랐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경찰은 그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갑자기 두 사건의 진범은 자신이며 자기가 하이타니 시라이시를 살해한 진범이라고 자백한 것이다.
사체 첫 발견자인 구라키가 왜 용의선상에서 쉽게 제외된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아버지의 진술을 믿지 못하는 가즈마가 아버지의 집에 들렸을 때 이웃집 요시야마에게서 집으로 이사할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게 되는데 원래 이사하기로 한 날에 비가 오는 바람에 박스만 몇 개 옮기고 둘이서 메밀국수를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날짜가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 4년 뒤의 5월 15일이다. 어렵사리 얻은 소중하게 여긴 그 집으로 이사하는 날짜를 굳이 자신이 사람을 죽인 그날로 잡았다니 믿겨 지지가 않았다. 경찰과 검찰은 수사의 빠른 종결을 변호사는 재판 준비만을 신경쓰자 용의자의 아들 가즈마와 피해자의 딸 미레이가 같이 한 팀이 되어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협력한다. 마치 백조와 박쥐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경찰이 아니라 용의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점이다. 서로 적이 되어야 할 그 둘이지만 목적이 같았기에 한 팀이 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극 중에 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감정이입을 하여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죄와 벌'의 균형을 무너뜨린 사람의 판단이 굵직한 사회적 이슈들과 맞물리는 과정에서 스토리 본연의 매력과 반전을 끝까지 숨겨 놓은 치밀하고 노련한 전개가 참 좋았다.
인간은 진위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은 거짓보다 진실쪽으로 기본값을 설정하는 성향이 있다.
살인 사건이 있던 날은 구라키의 이삿날이었고, 시라이시는 임플란트 시술 전 치과 치료를 받고 야구장에 갔을 리가 없다. 혈연관계가 아닌 타인에게 유산을 증여하는 것에 대해 이미 상담을 마친 후에 새삼 다시 또 시라이시 변호사에게 상담을 잡았다는 사실과 구하기 정말 어려운 도쿄돔 개막전 티켓을 어떤 경로로 구했는지 알 수가 없는 사실, 대장암 3기였던 구라키가 눈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힘을 합친 백조와 박쥐, 그들은 결국 과거의 사실을 알게 된다. 거짓 진술을 한 것임을 추리하며 하나씩 퍼즐이 풀려간다. 가즈마를 낳은 직후 자해공갈 수법으로 하이타니에게 걸려 치료비에 협박과 운전 기사 노릇을 하게 된 구라키는 할머니가 사기 당한 서류들을 밀며 해약을 요구하는 시라이시와 처음 만났다. 보험회사로부터 사고가 성립이 안 된다는 전화를 받고 우발적으로 하이타니를 죽인 시라이시를 다시 만났고, 어려 보이는 그의 도주를 묵인하고, 현장 증거를 인멸한다. 그 뒤로는 경찰이 엉뚱한 범인을 잡고 그 사람이 자살을 해 버린 것이다. 그 순간 잘못 체포한 경찰의 책임이고 살아 있는 사람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넘겨 버렸지만 그것은 잘못의 시작이었다.
우연찮게 아내와 딸이 죄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고생을 했고,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후 이혼하게 되는 가슴 아픈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식을 키우지 못하고 아빠에게 보낸 그 아픈 사연을 들어서 일까? 자주 그 가게를 드나들게 되면서 딸 올리에와 깊은 마음이 생기는데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털어 놓은 메일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비극은 오리에의 중학생 아들 안자이가 그 메일을 훔쳐보고, 자신이 이렇게 살게 된 이유를 알고 복수를 강행한 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안자이 대신에 범인으로 자백한 것이다.
시라이시 본인도 죽어가는 와중에도 범인인 안자이의 범행을 숨겨주기 위해 과거의 죄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차를 직접 운전한 뒤 흔적을 지우고 뒷자리로 가서 쓰러져 죽은 시라이시의 안간힘도 참 놀라웠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노력이 무색하게 안자이란 소년의 범행은 가족의 오랜 원한을 풀기 위한 복수를 가장한 흥미였다는 점에서 엄청 소름이 돋았다.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는 사적인 판단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정의를 위한 분노의 절차는 무엇인가?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조직의 애환과 한계와 맹점, 공소시효 폐지와 소급 적용을 둘러 싼 문제점, 언론의 무신경한 취재 경쟁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에게 쏟아지는 인터넷 상의 경박한 재단과 호기심의 배설 등 인간의 죄와 벌을 둘러싼 굵직 굵직한 논의들이 한자리에 총망라 된다.
이 작품의 제목 '백조와 박쥐'는 운명적으로 한 배를 타고 함께 하늘을 날며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는 가즈마와 미레이를 뜻한다. 사건의 진상을 알아 낸 그들이 선사하는 강력한 반전은 흡입력이 대단한 작품이다. 그래 히가시노라면 이런 작품이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