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과 방대한 양의 정보들. 3년 전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게 변해버린 2년 전의 세상이 있다면 2년 전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게 변해버린 1년 전의 세상, 그리고 오늘이 있다. 이렇듯 하루가 멀다하고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히 해두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면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는 중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 다시 말해 그들을 지배하는 사고는 쉽게 변하지 않는 듯 하다는 것이다. 좋은 의미로 쓰이는 단어는 아니나 몇년 전부터 그 쓰임이 널리 퍼지게 된 단어로 '꼰대' 가 있다.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대개의 나이 많은 분들을 일컫는 단어다. 이런 단어가 널리 쓰이는 것만 보아도 인간의 사고란 것이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에 발맞춰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인간이지만 결국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을 우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크게 10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간단히 말하면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왜곡되게 바라보는 10가지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인데 그렇기에 사실을 사실로서 바라볼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한다. 각 장에서는 그 본능에 대한 사례를 여러가지 자료들을 들어 설명한다. 이 책의 제목인 팩트풀니스처럼 사실에 충실한 점이 돋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그중에서도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게 다가왔던 몇가지 본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려 한다. 첫번째로는 1장에서 설명하는 본능인 간극 본능이다.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양극단의 것들만 본다는 것이다. 이것의 예시를 들기 위해선 멀리 나아갈 필요가 없다. 당장 주변만 돌아봐도 남과 여, 진보와 보수, 선진국과 후진국,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으로 세상 많은 것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우리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양극단의 것들을 위주로 보려는 태도는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따라서 작가는 우리에게 간극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다수를 보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말하는 다수란 한쪽 끝에 서서 반대편 끝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 다수의 것들도 돌아보는 시야를 가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는 직선 본능이다.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도 그와 비슷한 경향을 나타낼 것이라 예측하는 본능이다. 이는 기업 투자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미래도 그럴 것이라 예측하고 투자하는 사람들의 사고의 기저에는 바로 이런 직선 본능이 깔려 있다고 한다. 다음으론 공포 본능인데 저자가 소개한 열가지 본능 중에서 가장 와닿았던 본능이다. 인간들은 별 것 아닌 상황에서도 논리적이지 못한 어떤 추측으로 인해 공포를 느낄 수 있고 그땐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머릿속이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면 사실이 들어 올 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이런 사람들의 공포 본능을 조장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는 언론들의 입장에서도 일반 대중의 주의를 사로잡는 데에는 공포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주요 뉴스 이면의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공포 본능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왜곡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공포 본능에 대한 이 설명은 요즘 같이 바이러스로 매일매일을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그 다음으론 크기 본능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실들을 수치적으로 해석하기 전에 크기에 압도당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여러가지 비율을 비교한 뒤라야 그것이 정말 중요한 수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럽 국가들이 중국과 인도에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을 물었을 때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 비율로 따져보면 오히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배출량이 훨씬 높았다는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운명 본능이다. 운명 본능은 어떤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본능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모든 혁신적 변화를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은 내 스스로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고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주체라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었는데 이 책이 나의 이런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준 것 같다. 책의 여러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책에서 설명하는 여러가지 본능들이 내 안에도 내재돼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본능에 압도당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수치에 의존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끝없이 의심하고 저자가 말한 조언을 생각해보고 행동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다짐했다. 변화가 두려운, 혹은 아직도 과거에 젖어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