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이 매우 발칙했다. 그것이 이책을 선택한 이유였다. 대중은 우매하여 선동당한다는게 사람들의 오랜 믿음이었다. 그래서 자극적은 선동과 선전, 값비싼 광고에 쉽게 현혹당한다고 생각되어져 왔다. 과연 그럴까? 대중은 정말 이 책의 제목처럼 멍청한 것일까?
이 책은 대중은 개개인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군집이고, 오랜 믿음처럼 선동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중이 맹신한다면, 맹신론이 올다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쉬워야 하지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모호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작가는 대중이 합리적이라는 증거 및 왜 사람들이 선동된다는 믿음이 있어왔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서는 믿게 만들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대중에게 신뢰를 부여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맹신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인간 커뮤니케이션에서 신뢰성을 유지해주는 일련의 과정, 즉 신뢰할 수 없는 신호에 우리가 노출되는 정도를 최소화하고,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 추적함으로써 신뢰할 수 없는 신호를 보낸 사람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열린 경계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신뢰할지 하지 않을지가 결정된다. 기존의 믿음에 따르면 이런 열린 경계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례에서 대중은 대부분 선동되지 않으며 합리적으로 행동한 다는것이 증명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목축민 코사족은 어린 여성 선지자 농카우세는 가축들을 모두 도살하고 밭을 불태우면 앞으로 누구도 불안한 삶을 살지 않고 풍요롭게 살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제 코사족은 가축을 모두 죽이고 밭을 불태웠다. 하지만 코사족이 맞이한 것은 죽음과 굶주림 뿐이었다. 코사족이 정말 농가우세를 맹신하고 선동되어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사람들은 대중이 우매하다는 증거로 이런 사례를 들곤 했다.
하지만 코사족은 농가우세의 합리적인 근거도 없는 예언을 믿을 이유가 없었다. 코사족의 이런 극단적인 행동은 선동당했다기 보다는 족장에게 위협을 받은 사람들의 어쩔수 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코사족은 필요에 쫓겨 농가우세의 예언을 따랐고, 극단적으로 행동하였다.
히틀러는 대중을 선동하여 극단적인 반유대주의로 나치 독일을 통치하였다. 히틀러는 자서전에서 대중을 어린아이나 여성처럼 쉽게 속일 수 있고 맹신하는 존재로 하였다. 정말 그 당시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의 나치독일에 선동되어 맹신한 것일까?
작가는 대중은 선동되지 않는다는 증거로, 만약 대중이 선동되는 것이 맞다면 프로파간다에 노출이 많은 지역의 반대유대주의가 급격히 상승해야 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을 들었다. 오히려 프로파간다의 효율이 지역적 차이를 보인 이유는 기존에 존재하던 반유대주의의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부터 반유대주의 성향이 강했던 지역에서만 나치의 프로파간다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 지역의 주민들이 반유대주의 프로파간다는 정부가 그들의 편이므로 그들의 편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신뢰할만한 단서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대중은 선동되고 맹신하는 우뇌한 존재가 아니다. 세뇌도 효과적이지 않다. 한국 전쟁 이후 23명의 미군 포로가 고향을 등지고 중국행을 선택하였지만 그들이 세뇌되어 무비판적으로 공산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실제 포로 4,400명중 23명만이 전향한 것이며, 그 전향자들마저 정말 세뇌되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향자로 귀향하면 군사 법원에 회부되어 사형을 구형당할 것이 우려되어 그런 선택을 했을 뿐이다. 세뇌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기존 사람들의 믿음처럼 대중이 우매하다고 치부하면 손쉽게 그들을 선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증거들은 체제 선전이나 대규모 선거비용을 투자한 선거유세, 세계 전역에서 5,000억 달러 이상 쓰이고 있는 광고비가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 의문시 된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게 만만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대부분의 잘못된 정보가 끈질기게 유지되는 이유는 우리가 더 많이 아는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새로운 생각에 저항하는 쪽으로 기우는 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또한 적절한 단서가 없으면 우리의 기존 관념이나 미리 세워둔 계획에 맞지 않는 메시지를 배척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우리를 설득하려면 오래전에 구축되어 조심스레 유지된 신뢰와 명확히 입증된 전문 지식과 건실한 논증이 필요하다. 즉 튼실하게 짜인 신뢰와 논증의 고리를 따라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며 그 메시지의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