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양자역학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미시 세계는 양자역학이 지배하고, 거시세계는 고전역학이 지배하고, 즉 미시계는 확률론이, 거시계는 결정론에 좌우된다고 들었다. 양자역학이 궁금하여 책을 뒤적여본 적이 많았는데 다시금 또 본다. 아직까지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애초 양자역학을 이해하려고 한 내가 잘못인 듯 하다. 아인쉬타인도 인정하기 어려운 분야였다고 하니...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장, 슈레딩거의 고양이 이야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 모두 한 번씩은 읽어본 주제들인데 여전히 아리송하다. 이번 독서에서 퀀텀(Quantum)을 이해했다면 다행이다. 띄엄 띄엄, 불연속적 즉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적인 움직임. 이는 그 동안 우리의 이해 직관인 뉴튼 역학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원자는 양자역학으로 움직이고 원자가 구성한 더 큰 물질 또한 양자역학의 원리로 설명해야 하는데 더 큰 물질을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면 점점 더 어려움에 직면한다.
내가 알기로 물리학의 역사는 일부 천재의 직관에 의해 어떤 이론이 정립되고 이후 다른 물리학자의 실험에 의해 그 이론을 증명하면서 발전을 했고 정립되었다. 재미있게도 이론을 체창한 물리학자와 그 이론을 증명했던 물리학자는 나중에 모두 노벨물리학상을 타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 양자역학의 탄생과 학자간의 논쟁 그리고 우리 실생활에서 적용된 사례들을 언급하여 차근차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양자역학은 원자 세계를 기술하는 학문이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려면 원자의 운동원리를 알아야 한다. 원자주위를 도는 전자는 입자다. 하지만 전자는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지나가는 파동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하나의 입자가 하나의 구멍을 지나는 직관에 친숙한데, 입자이자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전자는 동시에 두 개, 아니 수십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한다. 거시세계의 실험 장치로 전자를 측정하니 우리의 경험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모순된 문제들이 발생한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결정할 수 없다. 저자가 의도하는대로 여기까지는 잘 따라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마트폰 확인하고, 형광등, 텔레비전 켜고, 화학제품 옷 입고,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음식먹고, 네비게이션 따라 출근하고, 편의점에서 구매물품 계산하기...이 모든 과정에서 양자역학이 없다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한다. 세상은 벌써 양자역학으로 움직인다. 원자의 오비탈구조, 전자의 파울리 배타원리, 전자의 공유결합, 고체속을 여행하는 자유전자 등의 원리로 반도체가 개발되고 지금 우린 컴퓨터를 쓰고 있다. 초기값의 민감도에 따라 발생하는 카오스는 비선형이라는 성질과 프렉탈 구조를 그 원인으로하고 있는데 양자역학에서는 이 둘이 없어 원리적으로는 카오스가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일반 컴퓨터는 하나의 비트에 0 또는 1을 넣어 처리하는 방법이나 양자 컴퓨터는 동시에 0 또는 1을 허용한다. 퀀텀비트 즉 큐비트라 한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중첩과 EPR 역설의 얽힘은 양자역학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제시된 역설이었지만 이제는 이 괴상한 성질을 이용하여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즉 중첩상태를 허용하는 양자컴퓨터는 동시 다발적으로 처리가 가능하여 처리속도가 괄목할만하나 실용화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양자 다중 우주, 생명의 양자 도약 등에 대한 설명은 아직도 이해가 어렵다. 책에 기술된 바에 따르면 물리학자나 생물학자들도 사실 또는 발견에 대한 설명을 위해 순수한 양자 역학 또는 고전 역학에 의존하기 보다 필요한 부분만 양자역학적 개념을 사용한다고 하니 때론 이헌령 비헌령인 듯 한 것이 현실의 민낯인 듯 하다. 이 파트는 읽기는 했는데 여전이 이해도가 낮은 영역이었다
이번 독서통신 연수를 통해 그래도 한 단계 올라섰다면 왜 퀀텀이 양자로 번역되고 그 의미가 띄엄 띄엄인지 즉 연속이 아닌 불연속이라는 것만 이해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언제가 시간이 지나 다시 책을 펼쳐봐야겠다. 그 땐 조금 더 넓은 사고의 지평이 열려 이해도의 제고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