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여명기 이후로 인간은 운명을 지배하는 존재가 누구, 혹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다. 삶의 궤적을 자신이 결정하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난 운명이 결정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해결해야 할 수수께끼이다. 우리는 자유의지와 온전한 의식을 갖추고 있는 주체인가, 아니면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자기도 모르는 구동장치로 움직이는, 미리 프로그램된 기계에 가까운 존재인가? 인간은 자신이 신의 권능으로 부여받은 영혼에 의해 생명력을 얻은 존재라고 주장했다. 혹은 신에 가까운 지적 능력에 영감을 받아서, 혹은 뇌 속을 어지러이 돌아다니는 신경화학 물질에서 힘을 얻어 생명을 얻은 존재라고도 주장했다. 대답이야 어쨋든 애초에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이 의식 그 자체에 대해 숙고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발달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신경과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나온 통찰을 적용해서 이런 질문에 대해 고려하고 있다. 현대 의학은 인간의 몸속에 입력된 것들이 각자가 물려받은 유전자와 상호작용해서 그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혈압이 낮고, 어떤 사람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또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희귀성 질환을 갖게 되기도 한다. 신경과학이라는 이 연구분야는 뇌의 가장 깊숙한 영역에 빛을 비추어 자신의 인생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느냐,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특정경로를 따르도록 운명 지워져 있느냐는 질문을 밝혀 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했던 의미의 운명은 아니지만, 외부의 힘으로서의 운명이라는 낡은 개념도 어느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뇌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수수께끼의 구조물로 여겨졌다. 뇌는 수십억개의 세포가 수조개의 연결로 뒤얽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달 덕분에 생각을 빚어내는 회로판의 구성을 밝힐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생각의 지도를 만들고 어떤 맥락 안에서는 생각을 통제할 수도 있다. 완전히 의식이 깬 상태에서 움직이고 학습하는 포유류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고해상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도 있다. 뇌의 구조와 작동을 관찰할 수도 있고, 노인에서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탄생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새로운 신경로가 형성되어 새로운 생각의 회로를 뒷받침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다. 두개골 아래를 들여다보며 습관이 형태를 잡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기술이 학습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인생결과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신경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는 암울할까, 밝을까? 신경생물학에 관한한 양쪽 모두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선천성 질환에서 창의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과 관련된 생체지표가 더 많이 발견됨에 따라 유전적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사회를 맞이할 위험이 있다. 개인의 유전정보가 상품화 된다면 사회적 계약에 따라 사람이 터무니 없이 높은 평가를 받거나 태어날 때부터 2등 시민으로 강등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사회는 미래를 상상하고 그 안에 함축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인류는 마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과 자유의지에 대한 신념 사이를 전자의 추처럼 오가고 있는 것 같다. 20세기 초반에는 인간의 특성 중 많은 측면이 내면 깊숙이 새겨져 변경이 불가능한 것이라 믿었다. 이런 관점 때문에 우생학이라는 잔혹 행위가 생겨나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다 1990년대 말에는 추가 반대쪽으로 다시 출렁거려 과학계와 시대정신 모두에서 뇌 가소성이라는 개념이 인기를 끌었다. 이때는 세상이 소통, 기술적 발달, 개인적 발달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추가 다시 반대쪽으로 출렁거리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신경과학의 발달은 분명 수백만 명의 삶에 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신질환과 알츠하이머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의료의 질과 삶의 질 모두에서 크나큰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