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도서에 대한 서평을 기존 독자가 잘 정리해 놓은 글이 있기에 이를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글쓰기를 돕는 책들은 크게 문예문과 비문예문으로 나뉜다. 요즘에는 물론 비문예문인 글쓰기를 돕는 책들이 대세다. 즉, 논술로 대표되는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책들이 대다수다. 이런 책들은 대개 외국의 작문교육 이론에 근거를 두고 추리력과 상상력, 비판력과 창의력 등을 중시하는 글쓰기 방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책들을 읽는다고 글쓰기 능력이 강화될지 의문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읽다 보면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엉성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글을 흥미롭게 쓰라고 강조하는 대목이 졸리게 읽힌다든지, 개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관련 설명은 정작 치밀하지 못한 식이다.
이러니 추리력과 상상력, 비판력과 창의력 등을 키우기도 기대하기 힘들다. 글쓰기 책을 읽으며 실력을 키우고 관점을 다듬으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 글쓰기를 공부하려다가 오히려 글쓰기에서 더 멀어지니 안타깝다. 이는 저자가 자신의 전공과 연관되는 글쓰기 이론과 지식을 나열하는 데만 급급해 빚어지는 비극이다.
글쓰기 만보는 글쓰기 교육 이론가의 책이 아니다. 만보란 한가롭게 슬슬 걷는 걸음을 의미한다. 제목부터가 이미 틀에 박힌 교과서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며 글쓰기에 관한 정연한 체계와 이론을 찾는다면 당연히 헛수고다.
대신에 글쓰기 만보를 읽으면 저자가 평생동안 열정적으로 창작과 번역을 하면서 깨우친 글쓰기에 관한 지식과 교훈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가 아니라면 감지하기 어려운 참신한 시각, 번역자가 아니면 찾아내지 못하는 미묘한 감각, 여기에 문예 창작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아지면 갖추기 힘든 지혜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문기자 경험과 영화에 대한 관심, 국내외 문학 작품에 대한 해박한 독서, 문학은 물론 문화 전반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토대로 펼쳐지는 자유로우면서도 실질적인 고품격 조언들을 향유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을 치밀하게 분석하거나 직접 창작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자세히 마련함으로써 문학 교실에서 공부하는 듯 자상한 문학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있었다'와 '것', '수' 등의 표현을 쓰지 마라(글이 늘어져 활력과 윤기가 떨어진다), 너무 딱딱딱 거리지 마라(말이나 글 중간에 딱이라는 말을 자꾸 넗지 마라. 선생님께 딱 여쭤봤더니 금새 딱 대답해주시는 거야. 이렇게 쓰면 어휘가 빈약해지고 지루해지니까 피해라), 접속사를 무자비하게 없애라(글이 간결해지고 힘차게 된다), 너무 너무 하지 마라(너무란 말을 너무 쓰지 마라. 정작 강조해야 할 때 힘이 빠진다) 등 구체적인 조언을 가득 담았다. 설령 다른 책들과 비숫한 설명이라도 자신의 삶과 경험, 수많은 문학 작품들, 최근의 현실까지 고스란히 엮어내어 울림의 폭과 깊이가 다르다.
여기에 저자의 인문적 소양과 자세를 직접 확인하는 것도 큰 줄거움이다. 아무데나 몇 쪽만 뒤적거려도 경구라할 만한 문장들이 튀어나온다. "작품은 스스로 끝나야 한다. 지정된 매수로 끝내는 작품은 타살이다.", "자신을 표현할 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인간은 실제로 작업을 하는 동안이 아니라 계획하고 기다리는 동안 가장 많은 일을 한다." 등 오랜 세월 동안 읽기와 쓰기, 생각하고 느끼기에 몰두해 온 내공이 있어야 가능한 표현들이다.
저자가 글쓰기 공부의 세가지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은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와 독후감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익혀가라고 강조한다. 만일 글쓰기를 몰아서 하거나 부모가 대신 써준다면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니 절대 피해야 한다. 읽다 보면 어느 대목에서는 교육에 관한 엄격한 교육자의 수상록처럼 느껴진다. 꼼꼼히 읽다 보면 문학이야말고 우리들의 사고력과 감수성, 읽기와 쓰기 전반에 걸쳐 가장 기본이 되는 궁극의 힘임을 깨우치게 된다. 일정한 틀에 맞추어 글을 쓰기 전에 문학 작품을 즐겁고 자유롭게 읽으며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 글쓰기를 공부하면 가장 좋겠다.
저자는 지금까지 '하얀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미늘' 등을 비롯한 빼어난 소설집과 150권이 넘는 훌륭한 번역서, 이 밖의 다양한 책들을 여러 권 펴냈다. 중학생때부터 그려온 만화를 포기하고 영문학과로 진학한 이후 세계 명작을 닥치는 대로 읽는 사이에 문학에 도취되었고, 자신도 그런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졌다는 고백은 귀중히 들어야 한다.
"내가 스물이었을때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일상적인 작은 경험도 위대하고 숭고한 지적 모험이었다.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얘기마다 문학이요 작품이었다.스스로 습작을 하면서 창작을 가르치는 책들을 구해 읽으며 글을 쓰고, 또 글을 쓰고, 그리고 또 썼다"(책날개에서) - 문예문이든 비문예문이든 글쓰기의 기본은 문학의 세계에 눈을 뜨는 데서 시작하고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