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만 틀면 연예인 보다 더 자주 나오는 사람 중 하나가 오은영이다.
예전 부터 소아 정신과 전문의로 유명했던 의사라고 하던데, 전혀 관심히 없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부터 확실히 관심이 생겼다.
특히, 내 아이가 다른아이와 다른건 아닐까 싶고 문제행동이 생길때마다 의지하던게 육아서적이었다.
살아오면서 힘들때마다 그 문제를 피하고 숨었던 나에게 아이의 문제는 더이상 피할 수도 숨을 수도 없었다.
아이의 말이 너무 느려서 걱정할때마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크면 다한다는 주변의 말에도 안심할 수 없었고,
그럴때 마다 내 자신이 잘못한건 아닐까 늘 자책하고 스스로를 원망했다.
정말 아이는 4살 후반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자기표현은 다 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늘 마음 졸이며 좋은 엄마가 되고싶은 마음만 가득한채 일도 육아도 잘하지 못한채 하루를 아둥바둥 사는것 같다
어렸을때 부터 꼼꼼한 성격이었던 점도 있지만 직업탓에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더 생겨났다.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그런 강박이 더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하루가 매일매일 반복되었다.
그러니까 내 아이는 실수를 해도 혼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니까 어리니까 그럴수 있다고, 너만은 그렇게 자라지 않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괜찮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느려도 괜찮다고, 나는 엄마니까 기다려 줄수 있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다른사람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다른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던 한귀로 흘려버리고 나만의 주관을 가지고 싶었는데, 나는 항상 타인의 말에 의식하고 살았다.
이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오은영의 프로그램을 봐도 아이의 문제행동은 대부분은 부모의 문제였다.
이 책은 아이를 위한 육아책이 아니라 나를 위한 치료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책의 극단적인 예처럼 그런 인생을 살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늘 내가 힘들고 어렵고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다.
남들이 보면 왜?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힘들면 힘든거다.
내가 힘든 이유를 말하려면 수십가지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한 이유를 말하라면 몇가지나 말 할 수 있을까싶다.
나를 알아차리려면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에 대한 나의 감정을 인정하라고 한다. 과연 나는 어떤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그런 나와 동생을 혼자서 키워주신 어머니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난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힘들었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어머니가 있었으니까 나는 다 괜찮았다.
말 그대로 의식주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남들이 말하는 사치를 부리는것은 나에겐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래도 공부에 욕심이 있었던 나는 과외한번 받지 못한게 늘 아쉬웠고, 브랜드나 메이커 의류나 신발, 가방을 사지 못했던것은
지금에서야 풀고있다. 어느정도 안정되고나서야 나도 좋은것 좀 사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아이에겐 좋은것을 사주고 싶고,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잘사는 사람이 되고싶었던것 같다.
그래서 책속에서 가장 공감됐었던게, 요즘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있다는 이야기이다.
어느순간 부터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하는 순간이 있었다. 20대의 나는 그 흐름에 맞춰 가입을 하고 내 생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변의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부러워하는 순간이 왔다.
아이가 태어나기 시작한 무렵부턴 너나 할것없이 아이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좋은 유모차, 좋은 옷, 아이와 잘 놀아주는 모습, 이유식과 유아식 사진들이 올라왔다.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나는 너무 잘하는게 없는 엄마같았다.
그리고 모든 SNS 계정을 탈퇴했다. 그냥 나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이런거 보면서 남을 부러워 하진 말자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이런거 보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다른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며 살고 싶진 않았다. 귀를 닫고 눈을 감는게 방법이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잘사는 사람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차이를 인정하고 살자고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그렇게 그들이 부럽지는 않아졌다.
나는 나대로 내 기준을 만들고, 내 아이는 아이의 속도대로 자라기를 믿어주며 많이 사랑해줄 것이다.
지금같은 시대에 누가 나에게 진지하게 조언을 해줄 수있을까? 나는 힘들일이 생기면 차라리 심리상담소에 간다.
그편이 더 올바르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는 쪽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말은 너무 진지하게 듣지않고, 내 스스로 필터링을 하는 마음의 잣대를 키우며 나는 나대로 살아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