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많은 나를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리는 두 영겁의 시간이 만나는 바로 그 순간에 서 있다. 하나는 영원히 지속되며 쌓여만 가는 과거요, 다른 하나는 기록된 시간 바로 다음을 계속해서 맞물려 이어지는 미래다. 우리는 이 둘 중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다. 찰나의 시간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애쓰면서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사는 데 만족하기로 하자. 그 시간은 지금부터 잠들 때까지다. 아무리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밤이 오기 전까지 라면 견딜수 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누구나 하루 동안은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해가 질 때 까지 다정한 태도로 인내하고 사랑하며 순수하게 살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 의미있는 부분은 그게 전부다.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법칙만 빼고,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오늘 뿐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매번 달라지며,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미래의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애쓰느라 오늘을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카르페 디엠 즉 오늘을 즐겨라 혹은 오늘을 붙잡아라. 오늘을 붙잡고,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어제는 꿈일 뿐이요, 내일은 환상에 불과하나 오늘을 잘 살면 어제는 행복한 꿈이 되고, 내일은 희망찬 환상이 된다. 그리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최악을 받아들이는 데서 온다. 심리적으로 볼 때 이것은 에너지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볼 때 최악을 받아들이면 새로운 에너지가 솟구친다. 최악을 받아들이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그러면 얻을 수 있는 것만 남는다. 최악의 상황을 직면하니 당장 마음이 편해지고, 며칠동안 느끼지 못했던 평안이 찾아온다. 그 때 부터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삶을 망가뜨린다. 이들은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초악을 상정한 다음 이를 개선하려 들지 않으며 난파선의 잔해에서 인양할 수 있는 것들을 건져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억울함에 가득 차서 최악의 경험과 격렬한 싸움에 몰두한다.
결국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생각이 고착된 우울증의 희생자가 된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은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모든 관계를 끊고 자신이 만든 가상의 세계로 도망친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걱정이라는 문제를 해결한다. 현대 도시의 한복판에서 내적 자아가 평안한 사람들에게는 신경질환에 대한 면역력이 있다. 사람에게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삶의 가치를 높이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보다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없다. 자신이 꿈구는 방향으로 자신있게 나아가며, 자신이 상상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평소에 기대했던 것보다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우리는 생각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려 든다며 우리는 이미 생각한 바를 뒷받침해 줄 사실만 열심히 찾고, 나머지는 무시하곤 했었음을 즉 내 편이 되어줄 사실, 즉 자신의 소망에 들어맞고 편견을 정당화해 줄 사실만을 원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우리의 개인적 욕망에 부합하는 것들은 진실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우리를 화나게 만든다. 어떻게 해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을까? 걱정에 휩싸인 상태라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에는 대체로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에서 한 걸음 떨어져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줄 방법이 있다. 첫째는 사실을 파악할 때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 정보를 모으는 중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면 공정하고 냉정한 시각을 갖게 되며 감정을 앞세우지 않게 된다. 둘째 때로는 상대편 변호사의 입장이 되어본다. 다시 말해 내게 불리한 사실을 모두 모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무엇을 할 지 결정한다. 결정한 대로 즉시 실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