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단테의 '신곡'을 읽으면서도 왜 이책이 명작인지에 대해 늘 의아해왔다. 그냥 우리의 전래동화처럼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권선징악 스토리의 일종으로 신앙적인 교훈을 주려는 것이 주 목적일 것이라는 이해말고는 특별히 다른 감정이 없었다. 물론 이 책이 갖는 시대적인 상황이나 문학사에서의 위치 등에 대해서는 잘 알리가 없는 어린 학생시절의 의견이랄까. 나이가 들면서도 이 책에 대한 나의 이해는 달라지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꼭 한 번 다시 정독해 볼 생각이 있었지만 영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이번 연수를 계기로 읽어볼려고 했으며, 원래는 원문에 충실한 번역본을 찾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특별한 주석없이도 읽어갈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썼으며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사진과 해설을 곁들인 역자의 의도가 제대로 먹혔다고나할까... 이러한 역자의 배려로 부담없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고 책의 내용뿐 아니라 덧붙여진 사진들을 통해서도 당시 이후 서양 사회에서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는지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얻을 수 있어 나름 보람도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단테는 1265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가정에서 라틴어 교육을 받다가 산타크로체수도원에서 논리학, 문법, 수학, 수사학, 음악, 기하학 등을 배웠다. 청년시절에는 '청신체파'라는 혁신적인 문학운동을 주도하였고, 아홉살에 만난 소녀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과 감정을 표현한 시와 산문을 모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펴냈다 . 불행히도 스물 네살의 젊은 나이로 떠난 그녀에 대한 연민이 단테로 하여금 '신곡'을 저술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며, 이 작품에서 그녀는 사랑과 구원의 여인이자 동정녀 마리아급의 묘사되었다. 청년시절부터 현실정치에 뛰어든 단테는 정쟁에 휘말려 1302년 피렌체에서 추방당했다. 이 때부터 외지를 떠돌며 기나긴 망명생활을 시작하여 망명기간 동안 '신곡'을 저술하였는데 이러한 과거의 경험들과 진보적인 성향이 '신곡'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느꼈다. 후에 단테는 고국으로부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면 사면을 내려주겠다'는 조건부 사면령이 내려졌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망명생활을 지속하던 중 1321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 책은 '사후세계를 중심으로 한 단테의 여행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만나 연모하다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베아트리체를 향한 순수한 사랑, 현실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으면서 겪어야했던 고뇌에 찬 오랜 유랑생황, 그리고 또 망명이후 심각한 정치적, 종교적 문제들로 인해 고민해야했던 단테가 자신의 양심과 번민 속에서 그 해결방법을 찾아내기까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구성은 사후세계를 지옥, 연옥, 천국의 세 구역으로 나누어 여행하듯이 묘사하고 있다. 예수에 비유하여 단테의 나이 33세 되던 해의 성금요일 전날 밤, 단테가 길을 잃고 어두운 숲을 헤매며 번민의 하룻밤을 보낸 뒤, 빛의 언덕으로 나가려 했으나 표범과 사자, 늑대에 막혀 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영혼이 나타나 길을 안내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단테를 지옥과 연옥의 산으로 안내한 뒤, 그의 뒤를 이어 어린 시절부터 흠모하고 사랑했던 여인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까지 이르게 되고, 다시 성 베르나르도란 안내자의 도움으로 이 숲에서 벗어나 지상낙원에 이르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신곡'에서 아홉 개의 구역으로 분류된 지옥은 영원한 슬픔과 괴로움의 세계를 나타내고, 일곱 개의 구역으로 구성된 연옥은 구원받은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그 죄를 깨끝이 씻어내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열 개의 구역으로 되어 있는 천국은 인간들이 하나님에게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결말은 기쁨으로 끝이 난다. 이처럼 단테는 세 명의 안내자에게 인도되어 지옥, 연옥, 천국을 차례로 돌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정화되어 가는데, 이러한 과정은 고단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며,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가톨릭교회에서 중요한 교화서로서 기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단테는 지옥편에서 당대의 부패하고 무능한 교황들과 전세기 인물들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정적들을 지옥에 있는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통렬한 복수를 하고 있음을 볼 때 사회변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천국의 묘사함에 있어서도 당시의 천문지식을 활용함으로써 그의 풍부한 상상력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 '신곡'이 단순히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처벌과 구원의 문제만을 다룬 교화서의 수준을 뛰어 넘어 오늘날 다른 작품과 차별될 수 있는 위대함은 단테의 오랜 망명생활 과정에서 겪은 고뇌와 방황을 통해 깨달은 그의 인생식견과 현세를 날카롭게 직시하는 사회개혁적인 내용을 저변에 깔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